1일 찾은 경북 경산·청도 지역의 선거 분위기는 친박연대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인근 대구지역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경산 시내 거리도 차분했다. 그 흔한 각 당 선거홍보 유세단의 흥겨운 로고송도 들을 수 없었으며, 평상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경산에서 남성재를 넘어 들어간 청도의 분위기는 조용함을 지나쳐 냉랭하기까지 했다. 청도군청 근처 한 식당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선거에 대해 묻자 한숨 섞인 목소리로 “선거예? 지긋지긋해예”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군청 앞 큰길에서 마주친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은 “선거이야기 하면 창피해 죽겠습니더”라고 말하며 말 건네는 것조차 피했다. 청도는 아직까지 ‘청도군수 돈선거’라는 깊은 충격에 빠져있는 듯 보였으며, 이번 선거와 관련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돈 선거’는 과거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했던 시기의 한국정치를 논할 때 등장했던 용어다. 돈 선거는 ‘여촌야도(與村野都)’현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농촌지역 유권자의 여당에 대한 몰표로 대변되는 이 현상은 금품을 이용한 집권여당의 유권자 동원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금품에 의한 표동원이 농촌에서 횡행했던 이유는 농촌사회가 도시와는 달리 서로 밀접하게 짜인 관계망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청도에서 돈 선거가 기승이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이 논리대로라면 청도가 농촌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청도지역의 농업분야 종사자 비율은 0.37%에 불과하며 제조업 종사자 비율은 17.2%에 이른다. 이는 청도의 돈 선거가 ‘농촌적 관계망’ 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설명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청도의 돈 선거 문제는 후보 간의 정책적 차이의 존재 여부와 선거의 경합 정도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후보자 간의 뚜렷한 정책적 차이가 미미한 상태에서 선거가 경합을 이룰 때, 후보자는 금품을 이용한 표의 매수라는 유혹에 빠져 들게 된다는 점을 청도 사례는 보여준다.

청도군수 선거에서 후보의 정책은 대동소이했으며, 선거는 박빙의 승부였다. 따라서 청도의 아픈 사례는 그 무엇보다도 정책경쟁이 부재한 한국의 선거정치, 나아가 선거제도에 초점을 맞추어 돈 선거 문제가 논의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이번 총선에서 청도는 또다른 중요한 문제 하나를 더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투표율 저하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제는 일반 유권자가 선거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해 줄 사람을 자유롭게 선출하고 이렇게 선출된 의원은 의회라는 장에서 유권자의 이해를 표출해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치메커니즘이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의 운영에 필요한 핵심적 요소 중 하나는 유권자의 선거참여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의 투표 기권행위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유권자의 기권현상은 대체로 자신의 표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할 때 나타난다. 이번 총선에서 청도지역에서 이런 유권자기권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높다. ‘경산·청도’ 선거구에서 차지하는 청도 유권자 수는 전체 유권자의 17.5%에 불과한 3만8846명이다.

만약 선거가 경합상태가 아니라면 청도지역 유권자의 표는 선거결과에 미미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다수의 청도지역 유권자는 기권을 택할 것이다. 이같은 징후는 북적거리는 경산 시내의 한나라당 최경환 후보 선거사무소와 한가한 통합민주당 서헌성 후보 선거사무소의 대비되는 분위기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청도군에서 만난 몇몇 군민은 이구동성으로 “투표를 해서 뭐하겠어요?”라고 내뱉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돈 선거의 상흔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청도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청도 돈 선거의 악몽은 이제 낮은 투표율 걱정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어찌보면 청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무관심 속에서 치러지는 4·9총선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 안용흔 교수 약력

▲1963년 생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대학원 정치학 졸업 ▲미국 UCLA대학교 정치학박사 ▲현 대구 가톨릭대 국제행정학과 교수 ▲세금과 선거(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