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문학진(왼쪽) 통합민주당, 이현재 한나라당 후보가 28일 오전 경기 하남시 신장동 거리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하남 = 심만수기자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


“광역 화장장 반드시 막아내겠습니다.”(문학진 통합민주당 후보), “시민들이 반대하는 광역 화장장 반대.”(이현재 한나라당 후보), “화장장 반대 정치인 1호.” (유성근 자유선진당 후보) 쌀쌀함을 느낄 정도의 바람이 부는 총선후보등록 마감일인 26일 오후, 하남시청 주변의 주요후보 사무소 건물에 걸린 현수막의 제목들이다. 인구 13만여명, 서울 중심 직장인들의 ‘베드타운’이면서 전체 면적의 95%가 녹지지역인 ‘청정 하남’ 총선의 최대쟁점은 광역 화장장 유치 문제였다.

광역 화장장 문제는 지난 17개월 동안 하남을 달궜던 이슈였다. 이 때문에 소송, 시장 및 시의원 소환 서명운동, 소환투표가 있었고 소환 찬성과 반대로 하남시가 극명하게 엇갈리며 홍역을 치렀다. 시장 소환은 투표율 미달로 무산됐지만, 최근 시장 재소환 시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광역 화장장 문제는 하남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슈다. 4·9 총선 하남의 최대쟁점이기도 하다. 결국 하남에서는 전국적 쟁점보다 지역 쟁점이 압도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후보 모두 광역 화장장 유치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후보들 간에 약간의 온도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민주당 현역 의원인 문학진 후보는 이번 총선을 ‘화장장 선거’라고 단언했다. ‘4월9일은 화장장 막을 문학진 뽑는 날’이라는 문구도 현수막에 넣었다. 광역 화장장 이슈가 이번 총선에서 결정적이라고 판단하는 듯 보였다. 선거 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광역 화장장 반대의견이 하남 시민의 65%이상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광역화장장유치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다. 그 는 총선 후보 모두 광역 화장장에 반대하고 있지만 “누가 진짜 반대하고 있는지 유권자들이 판단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하남에서는 광역 화장장이라는 지역이슈가 문 후보의 선거운동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하는 듯 보였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최근 여론조사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문후보측은 민주당에서 수도권 안정지역으로 분류하는 몇몇 지역 중의 하나라고도 했다. 물론 2000년 총선에서 3표차로 패한 ‘문세표’의 추억 때문에 마지막까지 마음 놓지 못한다고 했지만, 광역 화장장 이슈의 선점은 선거전략상 효과적으로 보였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올 초 51 대 17의 정당 지지도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역이슈였다”고 말했다.

이러한 점은 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장시장에서 만난 50대 상인은 “광역 화장장 이슈는 한나라당에 불리한 문제다. 당연히 민주당 후보에 유리한 이슈”라고 했다. 대선 승리 직후의 총선은 대선승리 정당에 유리한 것이 일반적이다. 현직 의원의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어려운 승부를 펼쳐야 한다. 그런데 하남은 달랐다. 지역이슈를 선점한 현역 후보가 선거전을 주도하는 양상이다.

물론 반대의견도 있었다. 식당에서 만난 40대 주부는 “선거를 앞두고 시민들에게 정확한 홍보나 설득노력 없이 선거를 위해서만 무조건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광역 화장장 유치를 통한 인센티브에 대해서도 고려했으면 한다”고 했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50대 남성은 “문학진 민주당 후보가 화장장을 반대하며 재선에 도전하는데 솔직히 중앙정치에만 신경 썼지 지역을 위해 한 일이 별로 없다. 정권도 바뀌었으니 힘을 실어주고 지역과 국가경제 살리기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이현재 한나라당 후보는 바로 이러한 점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이 후보 역시 광역 화장장 유치에 반대했지만, 뉘앙스가 달랐다. 이 후보는 규제개혁과 첨단산업 유치 등 지역경제 살리기를 강조했다. 한마디로 ‘경제 살리기 선거’라는 것이다. 광역 화장장 유치 시도도 하남 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법으로 이해하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광역 화장장을 추진하는 하남시장이 같은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점도 이 후보에겐 부담으로 보였다. 그래서 시민들이 반대하는 것을 무리해서 추진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인 듯했다. 그러면서 광역 화장장 이슈가 선거쟁점으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문 후보가 발표한 선거공약에는 첫번째로 ‘광역화장장 저지’가 올라있지만, 이 후보의 7대 공약에는 광역 화장장 관련 공약이 빠져있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발전 공약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처럼 경제 살리기를 최대 이슈화하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승리 직후 치러지는 총선에서 나타나는 ‘여당 프리미엄’을 극대화하려는 선거전략이다.

거리와 시장에서 만난 일부 유권자들도 경제 살리기가 중요한 쟁점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덕풍시장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광역 화장장은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반대가 심하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찬성하고 반대하는 것”이라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지난해 시장 소환과정을 보면 지역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광역 화장장 설치 예정지로부터 멀수록 유치반대 의견이 적었고, 아파트 밀집지역 등 광역 화장장이 주거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지역에서 유치반대 의견이 많았다. 한 20대 직장인은 “광역 화장장 문제에 대해 시민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찬성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유성근 자유선진당 후보는 자신이 ‘원조 광역 화장장 반대 정치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선거운동 명함에까지 ‘화장장 반대 정치인 1호’란 문구를 새겨넣었다. 문 후보를 겨냥해 “광역 화장장 반대운동의 정치적 독식시도가 있다”고까지 했다.

역시 광역 화장장이라는 지역 이슈가 이번 총선의 핵심적 사안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남의 경우 민주당 후보가 지역이슈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면, 한나라당 후보는 지역을 포함하는 전국적 이슈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후보등록 마감일, 하남시민은 정치인들과 관계자들의 적극적 모습과는 달리 심드렁한 모습이었다. 과연 하남 유권자들은 4월9일 전국적 쟁점과 지역 쟁점 중 어떤 결정을 할까? 하남시민들의 판단이 기대된다.

■박명호 교수 약력

▲1964년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미국 위스콘신대(밀워키) 정치학 석사 ▲미국 미시간주립대 정치학 박사 ▲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 한국정치학회 섭외이사(현) ▲지방선거 현장리포트(공저·2007), 현대 정당정치의 이해(공저·2004)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