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새소리 백가지’(이우신 글, 유회상 녹음, 다니구치 다카시 그림, 현암사)란 제목의 책이 있다. 96쪽 분량의 책 한권과 CD 하나가 전부인, 겉보기에 평범한 책이다. 한해의 정리에 바쁘던 지난해 연말 이 책을 배달받은 뒤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채 한쪽으로 치워놓고도 별다른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런 책을 최근 다시 펴 보고, CD를 들어본 것은 책을 만들면서 있었던 온갖 신산을 뒤늦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책이 기획돼서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간단치 않았다는 것이다. 책을 펴낸 현암사의 형난옥 전무에 따르면 책을 처음 만들기로 한 것은 10여년 전인 90년대 초반. 우리 꽃, 우리 나무, 우리 새, 우리 민물고기 등과 함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백가지’ 시리즈 중의 하나로 기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상당량의 사진 자료가 축적돼 있었던 김태정씨의 ‘우리꽃 백가지’나 이유미씨의 ‘우리나무 백가지’ 등이 비교적 쉽게 진행된 것에 비해 ‘우리 새소리 백가지’는 작업이 여의치 않았다. 새를 찾아 녹음기를 갖다 대었는데도 새소리가 제대로 녹음되지 않았던 것이다.

원인은 녹음 장비, 소리를 제대로 녹음하기 위해서는 수입이 금지된 일제 고성능 녹음 장비를 들여와야 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정부 산하 연구소에 기부하기로 하고 녹음 장비를 들여오는데 걸린 세월만 3년여. 녹음 장비 값만 웬만한 책의 원고료를 넘는 1200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었다. 녹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녹음을 맡은 유회상씨는 녹음 장비를 들고 새소리가 있는 깊은 산속, 바닷가 암벽 어디든 달려갔고, 그 과정에서 밤을 새기도 일쑤였다. 자연히 생계는 뒷전이었고, 출판사 측은 녹음에 매달리는 유씨의 생계를 도와야 했다. 이러기를 약10년. 하나에 4만원이나 하는 테이프는 몇 개나 들었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 결과 CD를 켜면 울려퍼지는 제비, 참새, 까치, 꿩, 멧비둘기, 소쩍새 소리…. 쏙독새, 파랑새, 직박구리, 울새를 지나 “호오--호호오오잇”하는 휘파람새 소리에 이르면 그만 산중에 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깊은 산중 혼자서 “휘이이---익”하는 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쫙 끼치기도 하는 호랑지빠귀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새소리를 듣는 곳이 서울 도심의 방안이기 때문일까. 책에 새의 특징을 잘 살린 세밀화를 싣고, 도래현황, 서식지, 습성, 먹이 등 생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실은 것도 특기할만한 책의 미덕.

하지만 책 내용 못지않게 관심이 가는 것은 출판사의 책을 만드는 자세다. 책값이 2만원이니, 수지를 맞추려면 이 책을 몇 권이나 팔아야 할까. 흔히 사람들은 장기 기획없이, 머리 한번 잘 굴려 대박을 터트리려는 심리가 출판가를 휩쓰는 세태를 걱정한다. 그러나 이런 세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책 하나 제대로 만들기 위해 10년 이상 작업해 온 곳이 있었다. 반갑지 않은가.

김종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