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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무례한 미국 우선주의

■ 좌구명 ‘춘추좌전’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당당한 대의명분 없이
소국 정벌해선 안돼”
군주에 조언·만류

40여년 대국 군림뒤엔
타국을 禮로 대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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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옛날에도 대국, 그러니까 힘센 나라는 다른 나라를 함부로 대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다른 나라를 예우하지 않음에 대한 경계가 줄곧 있어 왔다. ‘춘추좌전’의 다음 언급이 대표적 예다.

대국은 의(義)를 따름으로써 패자가 돼야 합니다. …미더움으로써 의를 행하며 의로써 대국에 부여된 사명을 완수함은 소국의 바람이자 사모하는 바입니다. 미덥지 아니하고 의롭지 않다면 천하 제후 중에 누가 반하지 않고 남아 있겠습니까?

인용문은 힘이 약한 나라의 제후들을 예(禮)로써 대우해야 한다고 패자, 그러니까 가장 힘센 제후에게 간언한 대목이다. 왜 이렇게 말했을까? 역사를 보니 지속가능한 강함은 힘이 아니라 예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힘에 기초한 강함의 시효는 그리 길지 않더라는 것이다. 대신 예를 기초로 하면 강함의 시효는 제법 길었다. 십여 개의 제후국이 중원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었던 춘추시대, 제나라가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중원 최강의 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이것이었다. 가령 제나라가 다른 나라를 대하는 방식은 이러했다.

당시 제나라의 제후는 환공이었다. 그는 명재상 관중의 보필 아래 제나라를 중원 최초의 패자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그렇게 조국을 중원 최강의 대국으로 빚어내고 난 어느 날 그는 후비 한 명과 궁궐 연못에서 뱃놀이를 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물결이 크게 일면서 배가 심하게 출렁였다. 순간 그는 물에 빠질까 봐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이 모습을 본 후비는 크게 웃었고 환공은 이를 불쾌하게 여겨 결국 후비를 친정으로 내쫓았다.

후비는 소국 채나라 제후의 딸이었다. 채나라 제후는 딸이 쫓겨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다른 나라의 제후에게 시집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제나라 환공은 채나라 제후가 자신을 욕보이려고 딸을 재혼시켰다며 채나라를 정벌하고자 했다. 이때 관중은 아무리 소국이라 해도 당당하게 내세울 대의명분도 없이, 그야말로 사적 원한을 풀고자 정벌해서는 안 된다며 힘껏 만류했다. 환공은 괜찮은 군주였던지라 관중의 뜻을 간파하고는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 채나라가 천자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는 일이 벌어지자 이를 빌미 삼아 천자의 이름으로 채나라를 정벌했다.

춘추시대에는 봉건제가 국제질서의 기축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제후는 천자에게 제때에 조공을 바쳐야 했다. 채나라 제후가 이를 어기자, 당시 천자 역할을 대신했던 제나라 환공이 봉건제의 예법 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채나라를 정벌했다. 강대국 제나라에 비하면 채나라는 작디작은 나라에 불과했지만,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정벌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환공과 관중은 예에 기초하여 소국을 대했던 것이다.

환공의 채나라 정벌은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모든 나라는 대등하다는 관점을 환기해준다. 나라인 한 기본적으로 동격이라는 사유다. 그래서 예로써 대해야 마땅하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공유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이들 제후국들의 외부에 유목세력이라는 공통의 강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강한 외적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제후국들은 어찌 됐든 봉건제의 예법질서를 따라 서로를 예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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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무례함으로 점철되고 있다. 대등한 이웃나라를 미국의 한 주로 삼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가 하면, 오랜 세월 동안 다져왔던 국제무역질서도 미국 이익이 먼저라며 마구 휘젓고 있다. 아무래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항할 적은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자신의 재위 동안은 혹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일러주고 있으니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