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유럽 방산업체인 스웨덴 사브(Saab)가 개발한 전투기 편대가 비행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동맹 경시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통한 집단방위의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유럽 토종 방위산업체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유럽 ‘자강론’이 떠오르고, 자체 재무장에 나선 유럽 국가들이 ‘바이 유러피안’(Buy European·유럽산 구매)‘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스웨덴 국방용 인공지능(AI) 기업 아비오니크(Avioniq)의 미카엘 그레브 CEO는 최근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대한 불신이 "분명한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바구니에 모든 달걀을 넣는 건 어리석다"면서 "공급기반을 더 다변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미국과 신규 계약을 체결할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무기 의존도가 너무 높을 경우 일방주의 행보를 가속하는 미국에 휘둘려 제대로 써보지도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유럽 방산기업들이 반사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결정적 계기는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백악관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난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돌연 중단한 것이었다. 이후 새 무기의 전달은 물론, 기존에 받은 무기를 계속 운용하기 위한 유지·보수조차 차단되자 우크라이나는 불과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이에 미국은 지난 12일 군사원조를 재개했지만 이 사건은 유럽에 큰 충격을 줬다. 유럽 국가들도 F-16 전투기와 F-35 전투기, 패트리엇 대공미사일, 조기경보기 등 첨단 군사장비에서 미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경우가 다수여서다.

이러한 배경 아래 유럽 기업들은 방산시장 점유율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 8위 방산업체인 스웨덴 사브(Saab)는 북유럽 4개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공중감시 체계 사업에 자사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기종 ‘글로벌아이’(Global Eye)를 주력 기종으로 밀고 있다. 미카엘 요한손 CEO를 비롯한 사브 관계자들은 덴마크와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매우 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싱크탱크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0∼2024년간 유럽 내 나토 회원국들이 수입한 무기의 64%가 미국제로 집계됐다. 이어서는 프랑스와 한국이 각각 6.5%, 독일 4.7%, 이스라엘이 3.9% 순이었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은 이달 초 8000억 유로(약 1270조원)의 자금 동원이 수반될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중 상당부분에 ‘바이 유러피안’ 정책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EU 예산을 담보로 회원국들에 지원되는 1500억 유로(약 238조원) 상당의 대출금의 경우 유럽산 무기 공동구매에만 지원하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박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