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루돌프 디젤은 1913년 런던으로 향하는 여객선 드레스덴 호에 탑승한 뒤 실종됐다. 소설가 더글러스 브런트는 그의 성공과 실종 사건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세종서적 제공

■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
더글러스 브런트 지음│이승훈 옮김│세종서적

1897년 최초의 실용 엔진 개발
효율 높고 힘 세지만 연료비 저렴
처칠 “금세기 완벽한 걸작” 찬사

1913년 런던행 여객선서 실종
21세기 클린 디젤 논란 휩싸여
발명의도와 상충 깊이 있게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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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디젤(Diesel)’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익숙하다. 주유소, 선박, 기차, 군용 잠수함까지 산업 전반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이제는 새로운 기술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내연기관. 하지만 이 단어 앞에 ‘루돌프’라는 이름을 붙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때 알프레드 노벨, 토머스 에디슨과 함께 세기의 발명가였던 디젤엔진의 창시자 루돌프 디젤(1858∼1913) 말이다. 동력 시대를 대표하는 발명을 했던 그는 동료 발명가들처럼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지 못했고, 무엇보다 1913년 한밤중 여객선에서 실종되었다는 그의 마지막 순간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러한 흥미로운 이야기에 매료된 것일까. 그의 생애와 실종을 추적하는 논픽션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는 미국의 소설가 더글러스 브런트의 손에서 완성됐다.

“세상은 루돌프 디젤을 잊어버렸다.” 그의 이름은 한국뿐 아니라 고향인 독일, 그리고 서구권에서도 사라졌다. 그러나 불과 100년 전만 해도 그는 공학계를 대표하는 스타였다. 1858년 디젤은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테오도르 디젤은 가죽 제본을 업으로 삼은 장인이었으며, 디젤 가문은 대대로 정밀한 제작 기술을 중시하는 집안이었다. 어린 루돌프는 자연스럽게 기계와 도구를 접하며 자랐고, 일찍부터 수학과 공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무엇보다 파리는 어린 디젤에게 영감의 도시였다. 1867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서는 니콜라우스 오토가 개발한 석탄가스 엔진이 소개됐다. 기존 증기기관과 달리 연소를 내부에서 일으키는 내연기관이라는 개념에 어린 디젤은 경탄했고 그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새로운 종류의 엔진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당시 디젤의 나이는 불과 아홉 살이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루돌프 디젤이 만든 혁신적인 내연기관 디젤엔진. 게티이미지뱅크

그로부터 25년 후, 디젤은 기존 엔진의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열기관 개발에 몰두했다. 프랑스를 거쳐 영국 런던에서 학업을 이어간 그는 시행착오 끝에 1897년 최초의 실용적인 디젤엔진을 완성했다. 33년 전 선망했던 그 무대, 파리 박람회에서 그는 디젤엔진으로 최고의 영예인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디젤엔진은 기존 증기기관보다 연료 효율이 20∼30% 높았으며, 낮은 엔진 분당회전수(RPM)에서도 강한 힘을 발휘했고, 연료비 또한 저렴했다. 무엇보다 점화할 때 스파크나 불꽃이 아닌 오로지 압축만을 이용하는 방식이어서 폭발 사고와 같은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선박, 기차, 중장비 등 대형 기계의 핵심 동력원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디젤엔진의 기술적 우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가 받은 찬사만으로도 당시의 혁신성을 체감할 수 있다. 에디슨은 디젤엔진을 “인류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라고 표현했고, 윈스턴 처칠은 디젤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화물선을 “금세기 가장 완벽한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디젤은 단순한 발명가가 아니었다. 오늘날의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그는 사회 문제 해결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대체 연료’에 대한 열망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는 석유가 귀했던 농촌 경제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가 구상한 초기 디젤 엔진은 작은 농가에서 직접 기름을 짜서 사용할 수 있는, 오늘날 ‘친환경 연료’의 초석과 같은 형태였다. 그는 디젤엔진 발명이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성과일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까지 구현해야 한다고 믿었고 공학자가 질병 퇴치, 환경 보호, 사회 공헌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동력 시대를 대표하는 발명가 루돌프 디젤. 세종서적 제공

책의 백미는 단연 그의 실종을 둘러싼 미스터리다. 1913년 9월 29일, 디젤은 런던으로 향하는 여객선에 탑승했다. 그러나 그는 그날 밤 배에서 사라졌고, 이틀 후 그의 유류품이 북해에서 발견되었다. 2주 후 심하게 훼손된 시신 한 구가 떠올랐지만, 신원 확인은 불가능했다. 당시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사고사, 자살, 타살 등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런데 저자는 한 가지 가설을 더 제시한다. 바로 위장 망명설이다. 디젤이 독일의 군국주의에 반대해 영국으로 망명했고, 이후 윈스턴 처칠의 지원 아래 영국 해군을 위해 디젤 잠수함을 개발했다는 주장이다.

현재까지 디젤의 사망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망명설 또한 명확한 근거는 남아있지 않다. 무엇보다 디젤과 관련된 미스터리는 그로부터 얼마 후 벌어진 1차 세계 대전과 함께 흔적을 감췄고 그렇게 그의 기술만이 대기업과 군대의 손을 거쳐 퍼져갔다.

실종의 진실을 좇던 독자라면 다소 허무할 수도 있지만, 미스터리에 이끌려 책을 다 읽고 나면 전혀 다른 깨달음이 있다. 역사 속 무수한 발명가가 그랬듯 디젤이 만든 기적의 기관이 가져온 거의 모든 효과는 그의 의도와 상충했다는 사실. 디젤기관은 경제 집중화를 해체하지 못하고 결국 대기업과 투자자의 도구가 됐다. 그리고 식물성 기름으로 작동할 수 있는 친환경 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과 달리 디젤이 배출하는 유해 질소산화물은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이 찍혔고 2015년 독일 폭스바겐그룹의 디젤엔진 배기가스 조작 사건으로 촉발된 ‘디젤 스캔들’로 부정적인 인식은 확산됐다. 그렇게 디젤의 생애는 ‘미스터리’를 넘어 역사 속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된다. 424쪽, 2만3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