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고 김지환 씨가 지난해 4월 1일 만우절을 기념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모교 경희대 교정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 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 아들 이름으로 추모기부 김지환씨 유족들

군복무 중 사고로 세상 떠나
조의금 등으로 모은 2000만원
보호종료 아동 위해 쓰일 예정

생전에 한푼 두푼 모아 선행
따돌림 당하던 친구 구하기도
“추모기부로 아픔 극복하시길”

유달리 따뜻한 아들이었다. 언젠가 함께 마트에 갔던 날, 누가 보아도 못생긴 오렌지만 골라와 ‘왜 그랬니’ 물었다고 한다. “제가 예쁜 것만 가져가면 다른 사람들이 속상하잖아요.” 아들이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땐 애써 모은 자신의 용돈을 ‘기부하고 싶다’며 선뜻 내어놓기도 했다.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듯, 부모님이 없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지난 1월 1일, 새해 첫날 하늘의 별이 된 고 김지환(사망 당시 22세) 씨 얘기다.

5일 초록우산에 따르면 지환 씨 영면 이후 부모는 아들 ‘김지환’의 이름으로 2000만 원을 ‘추모 기부’했다. 김 씨 명의로 기부된 후원금은 보호종료 아동 10명의 자립 지원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어머니 A 씨가 초록우산에 추모 기부를 결심한 이유는 이랬다. “지환이가 어릴 때부터 영아원에 기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해서, 자연스레 아이 또래의 어려운 친구들을 돕고 싶다 생각하게 됐어요. 보육원에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와 힘을 주고 싶어요. 우리 지환이에게 다 주지 못한 사랑을, 나눔과 봉사를 통해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요.”

지환 씨는 지난해 공군 복무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이미 의식 불명 상태였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13일을 버텼다. A 씨는 “그때 아들 친구들이 찾아와 얘기를 들려줬는데, 그 속에서 아들은 항상 밝고, 친구들을 살뜰히 챙기는 아이였다”고 떠올렸다. 군 복무 중에도 동료 장병들을 위해 학업 과외를 자청했다고 한다. A 씨는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영어 학습 봉사활동을 하며 나눔의 기쁨을 더 알게 됐다”며 “그 경험이 아들에게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고 김지환 씨가 지난해 8월 공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촬영한 모습. 초록우산 제공

어린 시절부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이였다. A 씨는 “중학생 때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돕다가 함께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며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고 친구들 사이에서 화해를 끌어내며 관계를 회복시켰고,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외면하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할머니 댁에 방문해서는 언덕길에 동네 어르신들이 미끄러질까 봐 본인의 용돈으로 염화칼슘과 모래를 사서 뿌리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지환 씨가 떠난 후 많은 이들이 찾아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A 씨는 “지환이 유치원 선생님, 중·고등학교 친구들, 얼굴도 몰랐던 군인 아들을 둔 부모님들까지 오셔서 위로해주셨다”며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추모 기부’는 그 감사함에서 시작됐다. 기부금도 지환 씨에 대한 조의금을 모아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지환 씨 유족은 “지환이의 친구, 군 동료, 군화모(군 아들을 둔 부모님 카페) 등 함께 슬퍼해 준 291명의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A 씨는 “아들에게 걸려온 마지막 전화에서 ‘빨리 청소하러 가야지, 내일 통화하자’며 말했던 것이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가슴이 미어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래도 많은 분의 위로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있고, 추모 기부를 통해 치유 받는 듯하다”고 말했다. 추모 기부를 망설이는 이들을 향해서도 “너무 어렵게 생각지 말고, 작은 마음이라도 나누며 아픔을 극복해 나가시길 바란다”고 권유했다. 이어 A 씨는 “지환이가 하늘에서 저희 부부의 선택을 응원해주고, 기뻐해 주리라 생각한다”며 “늘 그래 왔듯이 우리는 영원히 한 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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