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휴먼 다큐 자식이 좋다’

■ 콘텐츠 키워드로 뜬 ‘8학군 풍경’

‘제이미맘’ 이수지 페이크다큐
1타강사 로맨스 다룬 ‘졸업’
워킹맘 그려낸 ‘라이딩 인생’
KBS 추적60분 ‘7세 고시’등
선망 - 비판 상반된 감정 조명

‘대치동’이 문화 콘텐츠의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8학군’이라 불리는 사교육 1번지, 자식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라며 몰려든 이들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그들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1타 강사’와 그들을 향한 일부 학부모의 맹신이 혼재하는 곳. ‘누구나’ 입성하고 싶지만 ‘아무나’ 입성할 수 없는 대치동은 문화 콘텐츠의 소스로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또 관심을 받는다.

최근 개그우먼 이수지가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휴먼 페이크 다큐 자식이 좋다’는 다시금 대중의 이목을 대치동으로 가져왔다. 그는 극 중 사교육에 열중하는 대치동 학부모 ‘제이미맘’으로 분한다. 제이미맘은 4세 아이를 쉼 없이 학원에서 학원으로 옮기고, 그사이 차 안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학원 교사에게 전화가 오면 어설픈 영어를 섞어 대화한다. 아이에게 “제이미, 돈 두 댓”(Jamie, Don’t do that)이라고 타이르고, 배변 훈련에 성공했다는 교사의 전화에 환희에 젖은 그의 표정은 “제대로 된 현실 고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 결과 약 10분 분량의 영상 2편은 도합 125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실제 대치동 학원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추적60분’ 속 학부모의 모습.

이수지의 풍자는 다양한 사회 현상을 가져왔다. 이 영상에서 이수지가 입고 나온 벌당 수백만 원에 팔리는 몽클레어 패딩이 ‘극성 대치동 엄마’의 표상처럼 되면서 “엄마들이 몽클레어를 벗기 시작했다”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실제 유명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저가로 매물이 나온 이 패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KBS 1TV는 지난달 14일 ‘추적 60분-‘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를 편성했다. 이 방송은 유튜브 조회수 143만 회를 기록했고, 8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다수는 “달걀을 바닥에 내리치면서 ‘왜 병아리가 안 되냐’며 고민하는 수준” “사교육 문제가 출산율을 박살 낸다” “어린 시절 과도한 선행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등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지난해 10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자녀 라이딩 영상을 올린 배우 한가인은 비난 댓글이 이어지자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대치동은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지역이다. 사교육과 아파트값 관련해서는 부정적 반응이 쏟아지는 반면, 대치동 소재 학교 출신의 명문대나 의대 진학률이 높다는 통계 앞에서는 부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부유층이 몰려 사는 사교육의 중심이라는 대치동은 질시의 대상이자 부러움의 대상이다. 대중의 복합적인 심리가 투영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문화 콘텐츠로서 활용 폭이 넓어진 결과, 드라마의 단골 소재나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대치동 1타 강사의 삶을 그린 드라마 ‘졸업’.

대치동을 배경으로 삼은 콘텐츠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안판석 감독은 ‘아내의 자격’(2012)에서 자녀 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한 후 전세살이를 시작한 주부 서래(김희애)에 초점을 맞춘 데 이어, 지난해에는 ‘1타 강사’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졸업’으로 또다시 대치동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교육을 두고 남편과 갈등을 빚다가 눈물을 터뜨리며 “가! 대치동 가자고!”라는 서래의 한 마디는 현재 대치동에서 버티는 삶을 사는 여러 사람의 속내와 다르지 않을 법하다. 또한 좋은 대학을 졸업한 후 대치동 강사가 된 남성이 또래 ‘대치 키즈’들과 모여 “대한민국 다 무너져도 저 욕망이 남아 있는 이 동넨 절대 안 무너질 거거든”이라고 대화를 주고받는 ‘졸업’의 장면에도 씁쓸한 현실이 반영됐다. 17%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일타 스캔들’(2023)은 “누가 대한민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던가? 고소득, 고학력, 고득점, 고위층을 향해 고, 고하는 나라”라면서 더 나은 직업과 삶을 위해 부나방처럼 대치동으로 몰려드는 이들을 꼬집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니TV 드라마 ‘라이딩 인생’

여기에 또 한 편의 드라마가 일찍부터 주목받고 있다. 3일 처음으로 방송된 지니TV ‘라이딩 인생’이다. 딸의 ‘7세 고시’를 앞둔 워킹맘 정은(전혜진)이 자신의 엄마 지아(조민수)에게 대치동 학원가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것을 의미하는 ‘학원 라이딩’을 부탁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학교는 빠져도 학원은 빠질 수 없다는 일념으로 라이딩 인생을 사는 정은의 모습은 제이미맘, 한가인과 쏙 빼닮았다. 연출을 맡은 김철규 감독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유치원생들이 토익 문제를 풀고, 니체 철학에 대해 원어민 강사랑 영어로 토론하는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현재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라이딩 인생’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