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정상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

이미지 크게보기

전 세계적으로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유럽마저 펀드매니저 능력에 의존하는 액티브 펀드 비중이 크게 축소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변화가 가장 빠른 우리나라 주식형 펀드 시장에서는 ETF가 이미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ETF는 사실상 개별 주식과 유사한 특성이 있으므로, 펀드매니저에 의존하던 간접 투자가 쇠퇴하고 개인들의 직접 투자가 증가하는 추세로 볼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ETF의 거래 편의성, 저비용 구조 등 장점과 소셜미디어 발달에 따른 정보 접근성 증가 등에 기인한다. 또한, 미국 증시 등의 장기 상승으로 주도 업종이나 테마에 대한 판단이 쉬워진 영향도 있다. 게다가 일부 펀드들이 코스피를 비롯한 대표 지수보다 못한 수익률을 내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펀드는 더욱 외면받게 됐다. 이에 자연스럽게 펀드매니저의 존재가치도 점점 퇴색하고 있다.

사실 펀드매니저를 대변할 논리는 많다. 우선, 미국 증시의 장기 상승세가 꺾이면 직접 투자가 크게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 또한 공개된 정보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다른 투자자보다 우위를 점할 수 없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투자에서는 수단의 우열이 반드시 성패를 좌우하지도 않는다. 다소 불편하고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아이러니한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예는 매매가 매우 불편한 부동산 투자이다.

ETF가 시장 수급의 주도권을 갖게 되면서 펀드매니저들이 주력하는 종목 리서치의 효용이 크게 낮아졌다. 반면, 주도 증시와 테마에 거의 변화가 없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바람직하지 못한 전략으로 분류되던 자산 배분의 승률이 오히려 높아진 상황이지만, 역시 이런 현상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런 가능성들을 인정하더라도 펀드매니저가 과거처럼 절대적 우위를 가지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세상은 크게 발전했고, 투자자들의 눈높이 또한 높아졌기 때문이다. 1970년대처럼 액티브 주식형 펀드를 구원해 줄 스타 펀드매니저들도 등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펀드매니저들은 어쩔 수 없이 투자자들에게 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야 한다.

펀드매니저는 주식에 대한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깊이 있는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항상 다른 펀드매니저보다 잘해야 하고, 코스피 등 대표 지수보다 나은 수익을 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플러스 수익률을 보여야 하기도 한다. 광범위한 전선을 상대로 싸우다 보니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도 어렵고, 투자자의 요구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간 경우도 많았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세계에 갇혀 있지 말아야 한다. 펀드 투자자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단순한 목표를 설정해 전투의 범위를 축소함으로써 승률을 높여야 한다. 펀드 운용 규모가 너무 크지 않다면, 많은 펀드매니저가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