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 어린이 책

빨간 모자를 기다리며
미레이유 메시에 지음│샤를로트 파랑 그림│보림

이미지 크게보기

가족이 아프면 집이 물속에 잠긴 듯 고요해진다. 그럴수록 두 귀를 쫑긋하게, 두 발도 쫑긋하게 하고 아픈 가족을 살펴야 한다. 지금쯤 물수건을 갈아야 할까, 바닥을 더 따뜻하게 데워야 할까 살필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이사우라와 아를로도 그랬을까? 둘의 소중한 고슴도치 카푸가 병에 걸려 아팠던 나날의 이야기가 담긴 ‘빨간 모자를 기다리며’를 본다. 그들이 사는 숲 언저리 작은 오두막은 여느 때와 달리 분주해 보인다. 아이들이 아픈 카푸를 위해 요리하고 치료에 힘써 보지만 카푸의 병은 쉽사리 낫지 않는다.

아이들은 땅의 요정을 찾으러 숲으로 향한다. 우유가 담긴 작은 그릇을 한편에 놓고 덤불 뒤에 숨어 기다린다. 하지만 땅의 요정은 나타나지 않는다. 숲속 동물 친구들이 한 모금씩 우유를 마셔 버려 그릇이 텅 빌 때까지도. 지쳐서 포기할 법도 한데 이사우라와 아를로는 서로를 북돋는다. 딱한 아이들과 카푸, 그리고 동물들이 힘을 내어 다시 숲으로 향한다. 소중한 존재의 아픔을 낫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이다. 집 안의 텅 빈 찬장도,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도, 쏟아지는 빗줄기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다만 너무 오래 기다려 잠이 들었을 때….

아이들이 그릇 속에 놓아둔 버섯은 드디어 제 주인을 만난다. 땅의 요정이 나타난 것이다. 나뭇잎만 한 작은 체구에 동글동글한 얼굴, 그리고 빨간 고깔을 쓴 땅의 요정은 사실은 훨씬 앞 장면부터 아이들 가까이에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서도 덤불 뒤에서도 땅의 요정은 모두를 지켜보고 있었다.

땅의 요정이 다녀간 걸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쩐지 카푸는 한결 나아 보인다. 그 비밀을 독자는 안다. 땅의 요정이 부린 마법 덕분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이사우라와 아를로, 그리고 카푸의 헌신과 사랑 덕분이라는 것을. 52쪽, 1만7000원.

남지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