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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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확정됐어야 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국회 보고에 막혀 있다. 전기본은 향후 15년의 전력 수요를 전망하고 공급 방안을 제시한다. 2년마다 목표와 실적을 점검하여 수정 보완하는 실무 계획이다. 전기본은 국회 보고를 거쳐 전력산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국회는 여야의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는 이번 계획에 반영하기 어려우면 차기 계획에 반영하면 된다. 그런데 국회 보고가 막혀 전기본 수립이 지연되고 있다.

국회 보고가 안 되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제11차 전기본이 제안한 3기의 신규 원전에 반대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11차 전기본은 향후 15년간 재생에너지를 94GW 증설하고 원전은 4.9GW 증설해 원전 대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비율을 2022년 29.1% 대 8%에서 2038년 35.6% 대 29.1%로 비약적 개선하고자 한다. 제11차 전기본은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과 원전을 두 축으로 한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고민한 결과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원전 증설에 반대하고 반면에 국민의힘은 전기본의 에너지 믹스를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는 국회 보고를 열기 위해 1.4GW의 대형 원전 1기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2.4GW를 추가하는 타협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기는 수요와 공급이 매 순간 일치해야 해서 전력수급계획은 상당히 전문적이고 정교하게 수립된다. 그래서 원전과 재생의 단순한 치환이 아니라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면 그 가능성과 효과성이 설명돼야 한다. 전력수급은 최대 전력수요에 맞춰 수립하기에 원전 1기를 대체해 풍력이나 태양광으로 전력 피크를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설비 증설이 가능할지 등을 설명해야 하나 정부의 제시안은 이런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국회 보고 중단 사태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에너지 갈등을 보여준다. 제11차 전기본은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를 위해 나름대로 최적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에너지원을 쿼터제처럼 배분하는 형식의 계획은 여전히 원전과 재생을 둘러싼 진영 논리에 따른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를 고민해 제11차 전기본에서 제안한 것이 ‘무탄소 전력 시장’이다. 재생과 원전을 비롯한 다양한 무탄소 전력원들이 경제성, 유연성, 적기 공급성을 경쟁해 시장에서 선택될 수 있도록 제안한 것이다. 11차 계획은 2035∼2036년에 시범적으로 1.5GW 규모의 시장을 열고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현재의 전기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국회 보고가 막힌 현 상황의 타개를 위해 2037∼2038년에 잡힌 원전 1기를 단순히 취소하기보다 무탄소 전력시장용으로 전환해 시장 경쟁을 통해 적합한 전력원이 선택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나아가 무탄소 전력 시장을 선제적으로 확대해 2037∼2038년 구간의 전체 소요 전력을 경쟁을 통해 충당하는 것도 방안이다. 이를 통해 재생과 원전의 갈등을 시장 메커니즘으로 조정하고 수소 발전 등 다른 무탄소 전원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