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지난 1월 초 미국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쇼 ‘CES 2025’를 참관했다. 14만 명이 넘는 참가자로 붐볐던 올해의 CES 화두는 당연히 인공지능(AI)이었다. 모빌리티, 가전, 로봇, 헬스케어, 제조업과 농업 분야에서 AI 관련 제품이 지난해보다 50% 이상 증가해 AI산업혁명이 시작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AI 경제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 다음 날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와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 기업인 오라클, 그리고 일본 소프트뱅크의 CEO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3사가 합작사를 설립해 5000억 달러(약 716조 원) 규모의 초대형 AI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빅테크와 손잡고 AI 개발 속도를 끌어올려 AI 시대의 기술 패권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다.

AI 컴퓨터는 고성능 하드웨어로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전기 먹는 하마’에 비유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챗GPT 쿼리(질의)가 구글 검색보다 평균 10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향후 AI가 검색 기능과 결합하면 소요되는 전력은 검색당 30배로 늘어난다. AI데이터센터에서 수십만 개의 서버가 뿜어내는 열을 식히는 데도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 AI산업혁명으로 2026년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량은 2023년에 비해 2배가 넘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취임식에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석유·가스 시추와 생산을 확대하고, 전력 가격을 낮춰 미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후 석탄발전소와 원전 가동을 확대하고, 송전망과 가스관 신설은 물론,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기 위해 취임식 직후 파리기후협정에서 다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세계 최대의 원유·천연가스 생산국 지위를 이용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포석이다.

반면, 우리는 AI 산업이 요구하는 에너지 수요의 급격한 증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경제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신규 원전 건설은 야당의 반대에 부닥쳐 4기에서 3기로 축소됐다. 전력 수요의 폭증으로 탈원전 정책을 수정하는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20년간 전력 수요는 98% 늘어난 데 비해 송전설비 증가 폭은 26%에 그쳤다. 지방자치단체의 반발로 송전망 사업은 10건 중 8건이 지연되면서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이 AI 경제 시대에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국회는 지난해 11월 발의된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정부가 직접 송전망 건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야당도 해외 선진국이 실패를 인정한 탈원전 정책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탄소 배출이 없는 전기를 저렴하게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이 AI가 요구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경제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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