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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재선에 도전하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아칸소 주지사 경력이 전부인 40대 중반 빌 클린턴의 경합으로 치러졌다. 많은 사람이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리라 예측했는데 결과는 풋내기인 클린턴의 승리였다. 이 결과를 두고 여러 요인이 제시되지만 결정적 요인 중 하나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선거구호를 꼽는 이가 많다. 어떤 정치적 이념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당연한 이치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이다.

먹사니즘, 이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우리의 신조어이다. ‘먹다’와 ‘살다’란 고유어와 이념을 뜻하는 영어의 ‘이즘(ism)’이 결합된 것이다. 단순하게는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먹고사는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을 비꼬는 말로도 쓰인다. 경제는 결국 먹고사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먹사니즘’이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신조어는 여러모로 이상하다. ‘먹다’와 ‘살다’의 결합이니 ‘먹고살이즘’이라 해야 하고, 영어 비슷하게 하려면 ‘먹고사리즘’이라 써야 맞다. 한 걸음 양보해서 ‘죽다’와 ‘살다’의 결합을 ‘죽살다’라고 쓰기도 하니 ‘먹살이즘’이나 ‘먹사리즘’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한국어를 잘 모르는 이의 조어일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이것의 어원이나 어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함몰돼 다른 것을 모두 잊고 살면 안 된다. 그러나 정치와 행정이 국민의 먹고사는 기본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자격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먹사니즘이든 먹사리즘이든 어느 정도 해결돼야 정치도 돌아볼 수 있고 문화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먹사니즘만으로 국민을 현혹시켜 정권을 잡고자 하는 집단이 있다면 이 또한 경계할 일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