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독일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왼쪽)과 오스트리아 출신의 슈뢰딩거(오른쪽). 현대 물리학에 큰 영향을 끼친 두 과학자는 양자역학이 학문으로 발전할 당시 그 불확정성과 확률론적 해석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동아시아 제공

■ 양자역학의 역사
데이비드 카이저 지음│조은영 옮김│동아시아

에너지입자 ‘양자’ 개념 등장뒤
이론 둘러싼 100년 서사 복원

따분하고 어려운 학문이 아닌
‘슈뢰딩거 고양이’ 뒷이야기 등
물리학자들 소소한 일화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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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는 서사가 없다. 최신 연구는 과거의 연구 결과를 갱신한다. 이전 시대의 이해와 공부, 지적인 탐구의 과정은 삭제되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현대 물리학의 핵심인 양자역학은 더하다. 피터 힉스와 폰 노이만과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는 물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까지도 이들이 발표한 이론들은 학계를 뒤흔들었음에도 그 내용과 뒷이야기는 대부분 잊혔고 남은 건 이름뿐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물리학자들에게 이러한 과학의 ‘수직적’인 특성은 억울할 법도 하다. 과학의 발전이 시대와 무관할 리 없고 과학자의 삶에 파란만장한 드라마가 없었을 리 없다. ‘양자역학의 역사’는 인문학의 영역으로 치부됐던 그 서사를 복원한 책이다.

이야기는 늘 우리를 매료시킨다. TV에 나오는 대중 연예인이나 심지어 잘 알지 못하는 타인까지도 개인사를 듣고 나면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이니 과학자라고 어디 다를까. 상대성이론을 완성한 아인슈타인보다는 후배 연구자들의 양자역학에 대한 발표를 보며 “천진한 자들을 비웃는 것뿐이야”라고 동료인 파울 에렌페스트와 필담을 나누는 ‘꼰대’ 아인슈타인이 더 인간미가 있다. ‘양자역학의 아버지’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정립해놓은 연구를 명료하게 수학적으로 정리한 폴 디랙에게는 ‘너드미’가 느껴진다. 물리학과 과학사를 함께 연구하고 있는 저자이기에 다룰 수 있는 이 영역에서 그는 물리학 이론보다는 물리학자를, 원자 모형보다는 그들의 사진을 더 많이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은 갑작스럽고 빠르게 등장했다. 양자역학이 학문으로 정착하기 이전에 그 개념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시절을 살펴보면 당시 학자들은 지금 대중이 양자역학에 대해 느끼는 낯섦을 미리 겪은 듯하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정식화하고 나서 양자역학이 대두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고작 20년이다. 이 때문에 양자역학에서 빛이 연속적인 파동이 아니라 에너지 입자, 즉 ‘양자’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아인슈타인조차도 양자역학의 본질적인 불확정성과 확률론적 해석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평생 유지했다.

양자역학과 관련된 가장 대중적인 표현인 ‘슈뢰딩거의 고양이’에도 뒷이야기가 있다. 1935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떠난 아인슈타인이 독일에 머물던 에르빈 슈뢰딩거와 편지로 양자역학에 대해 논쟁하던 때의 일이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확률론적 해석을 비판하며 슈뢰딩거에게 불투명한 상자에 ‘공이 있다’거나 ‘공이 있지 않다’라는 완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슈뢰딩거는 친구 아인슈타인에게 ‘공’의 자리에 ‘고양이’를 넣어 “강철로 된 방에 소량의 우라늄과 가이거 계수기가 들어 있다는 상황을 주며 원자가 1시간 안에 붕괴할 확률은 0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붕괴하는 순간 청산가스가 들어 있는 작은 병이 박살 날 것”이라며 “고양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는 똑같이 불분명하네”라고 비유했다. 이후 슈뢰딩거가 한 학술지에 이어 동일한 문장을 적으며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양자역학 개념에 대한 ‘뒷담화’는 현재는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표현이 되어버렸다.

이와 더불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 나오는 의미 없는 말을 빌려 새로운 입자에 ‘쿼크’라는 이름을 붙인 머리 겔만, 명강의로 대학원생의 재수강을 불렀던 인기 교수 오펜하이머 등의 일화 속에 이들이 양자역학에 기여한 업적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과학 이야기는 따분하다고 치부해버리고 ‘양자역학이 도대체 뭐냐’는 질문이 하나의 밈(meme)이 된 시대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런 과학 이야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방식으로 행동하다가도 고유한 기이함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양자역학과 같은 물리학자의 삶 말이다. 376쪽, 2만 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