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류 정치인, 기억하고 심판해야 한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치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주면 더 좋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 현실은 충격을 주고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선진국이 됐다고 한참 으쓱했었는데, 왜 이 지경이 됐는가. 나라의 경제 수준과 민주정치 수준 간에 비례관계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2023년 기준 3만4653달러로 세계 30위인데, 브라질은 9032달러 80위로 50계단이나 차이가 난다. 그러면 민주정치 수준도 차이가 나야 한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2023년 민주주의지수를 보면 한국은 8.03점(세계 30위)에 올라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된다. 브라질은 6.68점(51위)으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한국 정치가 브라질의 정치와 너무 닮았다는 사실이다. 제36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으로 물러났고, 제38대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대선 패배에 불복해 의사당 점령을 시도했다. 제39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부패 혐의로 복역했으나 판결을 내린 법원이 관할 지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로 번복돼 정치에 복귀했다. EIU지수는 법제를 기준으로 평가한 것인데, 양국에서 유사한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람 곧 정치인들의 의식 수준이 비슷한 탓이다.

한국과 브라질은 의회도 닮은꼴이다. 군소 정당에 유리한 브라질 의회는 모든 것을 나눠먹기식으로 하면서 정치 갈등의 원산지이다. 우리 국회도 화급한 민생 법안이 수북이 쌓였는데도 정치싸움만 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살기 어렵다는 국민의 목소리에는 아예 귀를 닫았다. 초유의 대통령 구속과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자신들의 셈법으로 일희일비한다. 계엄·탄핵·특검 등 이미 일어난 사건의 규명에 치중하는 과거 회귀형으로 바쁘게 돌아갈 뿐이다.

국회의원들은 정치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자원빈곤국, 오천만 내수시장인 한국은 늘 무역에 목매고 살아야 하는 처지지만, 광활한 국토에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브라질은 자족 가능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즉, 브라질의 정치는 내부 문제로 남을 수 있지만, 한국의 정치는 국가경제를 휘청이게 한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더불어 국제질서가 요동칠 판인데 루비콘 강을 건널 위험도 있다.

국민은 과거 회귀형보다 미래 지향형으로 일하는 국회를 바란다.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여야정 국정 협의체를 구성해 시작한 현안인 민생법안이라도 신속히 처리하기를 원한다. 국회의장부터 당리당략을 떠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4류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 사이에서 대통령 무용론, 국회 무용론에 정당 무용론, 선거 무용론까지 나오는 판이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고 사람이다. 참다운 정치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길거리로 뛰쳐나간 사람들도 있지만, 30%가 넘는 중도층은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인당 GDP가 4배 가까이 높은 잘사는 나라인데도 50계단 아래인 나라만도 못한 정치에 화가 치밀고 자존감도 상했다. 지금 국민은 선진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품위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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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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