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8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열린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 추모식’에서 진도 씻김굿 보존회의 추모공연 지전춤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 크게보기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 추모식’에서 박한신 유가족대표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빠는 단순한 아버지가 아닌 친구이자 멘토였습니다. 아빠의 딸로 태어나서 정말 행복했어요. 당신과 했던 모든 순간을 기억할게요."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의 딸 A씨는 이렇게 말하며 울먹거렸다. 참사 희생자 합동추모식의 유가족 편지 낭독 시간에서였다.

국토교통부는 18일 무안국제공항 2층에서 희생자 179명의 넋을 기리는 합동추모식을 열었다. 참사 20일 만이다.

추모식은 진도 씻김굿을 시작으로 묵념, 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박사(薄紗) 고깔을 쓰고 흰 상복을 입은 무녀들이 무명 매듭을 풀며 망자들의 한을 위로했다. 매듭이 한 꺼풀씩 풀릴 때마다 유가족들 사이에서 통곡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희생자 179명의 이름과 공항 1∼2층 계단에 남겨진 추모 메시지를 LED로 송출하는 헌화식에서도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아버지를 잃은 딸 Y씨는 "무안공항에 도착했던 그날 아직 사망자 집계도 안 됐는데 유족이라고 해서 몇 번이나 심장이 내려앉았는지 모른다"라며 "울음소리 가득한 공항에서 제발 구출된 두 분 중 한 분이 아빠이길 빌고 또 빌었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부끄럽고 쑥스러워 그동안 말은 못했지만 서른 살 넘은 딸에게 늘 공주라고 불려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늘에 있는 아빠에게 전했다.

아내와 딸을 떠나보낸 K씨는 "아내를 장례식장으로 옮기기 위해 인도 확인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그 순간 딸의 시신 인도가 가능하다는 문자가 왔다"라고 기막힌 사연을 전했다. 그는 아내와 딸에게 "하늘나라에서도 떨어지지 말고 같이 지내다가 아빠가 갈 때 꼭 같이 나와달라"고 부탁했다.

박한신 유가족 대표는 추모사에서 "유가족들의 시간은 사고가 나기 전에 멈춰있다. 열심히 살아온 그분들의 인생은 저희가 이어와야 한다"며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한을 풀고 싶다. 하나의 숨김도 거짓도 없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참사 원인을 밝혀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필요한 개선책을 조속히 마련하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최 권한대행은 "모든 조사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유가족 여러분께 소상히 알려드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추모곡 ‘내 영혼 바람되어’ 공연을 끝으로 추모식이 막을 내렸다. 유가족들은 참사 수습을 도와준 자원봉사자들과 공무원, 경찰관 등에게 단체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박 대표는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신 국민 여러분과 전국에서 모이신 수많은 자원봉사자, 소방관, 경찰관, 공무원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라며 "또 무안군과 전남도, 광주시를 비롯한 지자체와 국토부를 비롯한 관계 기관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지난 5일 정부의 마지막 브리핑 후에도 경찰과 소방, 전남도 등 관계 당국 관계자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한 바 있다.

박 대표는 "이분들이 처음에 욕도 많이 먹고 정말 고생 많이 하면서 저희를 도와주셨다"며 "이분들도 가족이 있으신데 그만큼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슬픔과 분노를 겪고 있는 희생자 유가족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례적이어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박 대표는 이날 추모식에서 "이번에 여러분들이 저희에게 주신 은혜 잊지 않고 평생을 간직하고 보답하면서 살겠다"라고 했다.

장재선 전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