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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책

코끼리를 만지면
엄정순 글·그림│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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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맹인모상(맹인 코끼리 만지기)’이라는 말이 나온다. 진리를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달으라는 의미겠지만 시각장애인 비유가 오늘날 감수성에는 맞지 않는다. 이 그림책은 시각장애 어린이가 직접 코끼리를 만져보는 경험을 한 후 그림이나 조소 등 미술 작업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윤리적, 예술적 감수성을 새롭게 한다.

엄정순 작가는 오랜 기간 시각장애 어린이에게 미술 교육을 해 오며 시각장애인과 미술의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편견을 어린이의 실제 예술 작업을 통해 가볍고 유쾌하게 전복해 왔다. 그는 1997년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을 만들고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 그림책의 바탕이 된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그중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진행됐다.

이 그림책은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의 과정을 그림책이라는 예술 장르에 맞추어 편집하고 어린이들의 미술 작업을 공유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먼저 교실에서, 아직 보지 못한 코끼리를 상상하며 코끼리의 이미지를 만드는 수업을 한다. 그런 다음 태국의 코끼리 자연공원에 가서 코끼리를 실제로 만져보고, 비장애인이 만들어낸 기존의 코끼리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은 채 자신이 감각한 코끼리를 미술 작업으로 표현한다.

이 책에 실린 어린이의 미술 작품은 종이에 크레용, 종이에 혼합 재료, 조합토 등으로 다양하다. 어린이와 예술가가 함께 완성한 작품에는 천편일률적이고 규정화된 미술 교육에서 보기 힘든 상상력이 넘친다. 시각장애인 어린이가 비장애인이 보지 못한 코끼리의 세계를 아름답게 창조한 결과물을 통해 예술과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얻게 된다.

김유진 아동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