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세기 말∼20세기 초 제작으로 추정되는 ‘문자도8폭병풍’. 孝(효), 悌(제), 忠(충) 등 유교의 덕목을 한자로 그려 넣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올 전시 키워드 떠오른 ‘힙트래디션’

3월 아모레퍼시픽‘조선민화展’
120점 모아 현대적 관점 조명

4월 호암미술관 ‘겸재정선展’
10년만에 ‘금강전도’ 공개돼

현대미술관선 론뮤익 개인전
북서울선 이건희 컬렉션 소개

이미지 크게보기 단국대 석주선기념관이 보존 처리한 ‘활옷’. 리움미술관 제공

올해 미술계 화두는 ‘힙트래디션’이 될 전망이다. 힙트래디션은 ‘전통’(트래디션·Tradition)에 ‘멋있고 인기 있다’는 뜻의 ‘힙(hip)’을 붙인 신조어.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흥미로운 문화현상 중 하나다. 우리 옛것을 힙하게 여기며 이를 즐기는 분위기가 전시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일까. 국내 미술계를 리드하는, 말 그대로 ‘힙’한 사립미술관 두 곳에서 올해 가장 먼저 여는 대형 전시가 모두 우리 전통 미술을 조명한다. 호암미술관의 ‘겸재 정선’전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조선민화대전’(가제). 지속적인 미술 시장 불황과 국내 정치 불안으로 예년에 비해 굵직한 전시 소식은 아직 없는 가운데, K-컬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전통 미술을 전면에 내세운 건 오히려 신선하고 시의적절하다. 두 전시를 필두로, 국내외 현대미술 거장의 개인전 등 2025년 주목할 전시를 소개한다.

◇10년 만에 외출하는 ‘금강전도’…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전 = 오는 4월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하는 ‘겸재 정선’은 삼성문화재단이 간송미술재단과 의기투합해 마련한 특별전시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이자 한국 회화사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의 작품 120여 점이 대거 수장고 밖을 나온다. 진경산수화뿐만 아니라 인물화, 화조영모화 등 겸재의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며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특히, 국보인 ‘금강전도’(1734)는 2015년 리움미술관 ‘세밀가귀’전 이후 10년 만의 공개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또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다.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또 다른 미술관 리움에서도 작지만 뜻깊은 전시가 진행된다. ‘겸재 정선’ 전보다 앞서 3월에 해외에 소장된 우수한 한국문화유산의 보존 처리 성과를 공유하는 전시가 열리는 것.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이 보존 처리한 미국 피보디에식스박물관 소장품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와 단국대 석주선기념관이 보존 처리한 조선 왕실 ‘활옷’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보존 처리된 작품들은 그 자체로 보는 이의 미감을 충만하게 하지만, 이를 통해 평소엔 잘 보이지 않는 미술관의 중요한 역할, 그 존재 의의를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전시다.

이미지 크게보기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위에서부터)와 이불 작가의 ‘나의 거대서사-바위에 흐느끼다’, 론 뮤익의 ‘소년(Boy)’. 호암미술관·리움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토록 ‘힙’하고 현대적인 조선 민화…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조선민화대전’ = 3월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리는 고미술 기획전 ‘조선민화대전’도 기대를 모은다. 겸재 정선이라는 대가의 중후한 작품들과는 또 다른, 선조들의 자유로운 예술 언어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민화의 독특한 화법을 현대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경계와 규정짓기를 거부하고, 특유의 강렬한 색채를 뽐내는 민화를 한껏 부각시킨 전시는 관람객에게 민화를 재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 16개 기관에서 소장한 조선시대부터 근대기 민화 120여 점을 모았다. 유교 덕목 8가지를 쓰고 그 안을 그림으로 채운 ‘문자도8폭병풍’, 책을 중심으로 여러 문방구를 그린 책거리(冊巨里) 그림을 모은 ‘책거리8폭병풍’ 등 민화와 공예품을 함께 전시해 시대를 풍미한 예술 세계를 다각도로 조망할 수 있게 했다.

◇론 뮤익·부르주아·김창열… 현대미술은 국내외 거장 중심 = 국립현대미술관은 4월 호주 출신 세계적인 조각가 론 뮤익으로 신년 전시를 시작한다. 론 뮤익은 극사실주의 조각가로 세계 어디서 전시를 열어도 늘 성공하는 ‘흥행불패’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전시 예산도 높기로 유명한데, 이번 전시는 카르티에 재단의 후원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뮤익의 특징은 인물의 크기를 과장하거나 축소시켜 인간의 감정을 강조하는 것이다.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주며, 삶과 죽음, 고독, 불안 등 복잡한 감정을 전달한다. 아시아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호주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서 선보인 ‘매스’(Mass)를 비롯한 조각과 사진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8월에는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회고전이 열려 주목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3월 서소문본관에서 강명희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1970년대 초 프랑스로 이주해 국내 활동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작가의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한다. 또 북서울미술관에서는 4월 이건희컬렉션의 한국근현대작가 10명의 작업을 소개하는 ‘그림이라는 별세계-이건희컬렉션과 한국근현대작가’전을 연다. K-미술의 빈 곳을 채워 넣는 의미 있는 전시다.

이미지 크게보기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 대형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부르주아의 대규모 회고전이 오는 8월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호암미술관 제공

대형 거미 조각 ‘마망’으로 유명한 전설의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대규모 회고전도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를 기획한 건 ‘마망’의 국내 소장처인 호암미술관으로, 지난해 9월 개최한 도쿄 모리미술관의 회고전과는 또 다른 성격으로 준비 중이라는 후문이다. 또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외벽에 조각품을 전시한 이불 작가는 9월 리움미술관에서 작품 활동 40년을 돌아보는 전시를 연다. 아트선재센터는 2월부터 하종현의 초기 작업을 집중 조명하는 ‘하종현 5975’를 연다. 하종현은 배압법이라는 독특한 기법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