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4년 막바지 계엄-탄핵 사태
경제 충격에 정치 후진국 조롱
역술·무속에다 북풍 의혹 참담

개헌 어렵고 해법 될지도 의문
검증된 지도자 선별이 더 중요
해방 80년 양극화 정치 허물 때

2024년의 마지막 날이다. 어느 해보다 스펙터클한 올해의 압권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와 14일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일 것이다. 대통령 탄핵이야 벌써 세 번째지만, 비상계엄 선포는 1979년 이후 처음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에 가장 위협적인 비상계엄이었다. 선거라는 민주주의(democracy) 절차로 뽑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한순간에 ‘미쳐버린 세상’(democrazy)으로 바꿨다. 정치적 상상력과 의식구조가 딱 1970년대에 머문 대통령과 일부 정치군인에 의해 선포된 비상계엄은 민주주의의 주역인 행동하는 시민에 의해 몇 시간도 안 돼 제압됐다. 대통령은 탄핵 결정을 앞두고 역사의 평가는 물론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짧은 시간에 지옥에서 천당을 오간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은 다시 한 번 전 세계의 감탄을 자아냈지만, 손해도 엄청나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비상계엄으로 가뜩이나 안 좋은 경제에 ‘한국의 5100만 국민이 할부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고 지적했다. 원·달러 환율은 벌써 1달러당 1500원에 가깝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처음이다. 부동산 거품도 꺼져 가고 중소 건설사는 부도나며 자영업자의 연체율과 공실도 늘고 있다. 누구의 말처럼 풍전등화의 위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게 아니라, 비상계엄 선포 때문에 온 국민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 언론에서는 계엄 선포로 경제·사회·외교적 손실이 300조∼900조 원에 이를 것이란다.

더 큰 상처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새겨졌다. 한국이 제3의 민주화 물결에서 최고 성공 사례인데, 2024년에 ‘쿠데타’(내란)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정치 후진국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그것도 역술이나 무속에 능하다는 김건희 여사로 시작해 천공, 윤석열 부부를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로 부른 명 박사, 건진법사, 버거보살 등에 의지해 나라를 경영하고 계엄을 설계한 것으로, 전 세계 언론을 통해 퍼져 나갔다. 또, 북풍 공작의 개연성도 재확인시켰다. 장기간 계엄 모의 중 북한 오물풍선 원점 타격, 무인기 평양 상공 비행, 북방한계선(NLL) 갈등 등을 통해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려고 시도한 때문이다. 전 세계 외교에서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고 3주 뒤면 들어서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도 멀어지는 중이다.

왜 이런 일이 터졌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 승자독식 선거제도, 또는 초양극화 정치 문화 등이 서로 영향을 줬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헌 등을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개헌이 한국 정치의 모든 병폐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 것도 아니고, 20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동의할 개헌안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라 걱정이 많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다음 대선에서는 반드시 준비되고 검증된 인물을 대선 후보로 고르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근본도 없고 단련도 덜 된 인물을 반짝 인기에 편승해 대선에서 이기자고 용병같이 수입해서 쓰고 버리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시대정신은커녕 자기가 말하는 공정과 상식도 무엇인지 모르는 인물에게 대한민국을 다시 맡기는 일은 너무나 위험하다. 자기 말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걱정하고 위하는 사람들을 널리 구해서 쓰고,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당당한 사람들을 탕탕평평(蕩蕩平平)해서 쓰는 지도자를 골라야 할 것이다.

내일부터 2025년이다. 1945년 해방으로부터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다시 또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다. 데모크라시가 데모크레이지로 바뀔 수 있다고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헌법과 법률을 바꾸는 것보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트럼프 시대의 민주주의 붕괴를 관찰한 결과다. 한국에서도 새해부터는 대통령 후보와 정당부터 갈라치기를 삼가고, 극단적인 언행을 피해야 한다. 가장 민주적이고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쿠데타를 맨몸으로 막은 시민이 다음 대선에서는 양극화 정치를 온몸으로 물리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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