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2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열린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뉴시스

여론조사 틀린 신문사·상대후보 인터뷰 편집한 방송사 등 줄소송
언론들, ‘천문학적 변호사비’ 공포로 비판 기능 약화될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언론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잇달아 제기하면서 미국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변호사비를 감당해야 하는 언론들이 자기검열에 나서면서 비판 기능이 위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대선 직전 공화당 우세 지역인 아이오와주 여론 흐름을 잘못 짚은 지역 유력지 ‘디모인 레지스터’를 상대로 지난 16일(현지시간)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 매체는 대선(11월5일) 직전 아이오와에서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47%의 지지율로 트럼프 당선인(44%)에 오차범위 안에서 역전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트럼프 당선인이 13%포인트 이상 격차로 승리했다.

트럼프 당선인 측은 디모인 레지스터와 그 모회사, 여론조사를 수행한 베테랑 언론인 J 앤 셀저(68)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 당선인 측은 소장에서 오류로 드러난 여론조사 결과에 ‘의도’가 개입됐다며 신문이 일종의 ‘선거 개입’을 했다는 주장을 폈다. 잘못된 여론조사 결과 때문에 낙승할 지역에 선거 자금을 더 투입했고, 유권자들도 속았다며 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해리스 후보의 인터뷰를 문제 삼으며 CBS뉴스에 100억 달러(약 14조6000억원) 가액의 소송을 대선 직전 제기하기도 했다. CBS가 인터뷰 내용을 트럼프 측에 불리하게끔 편집했다는 이유에서다.

언론을 상대로 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거액 소송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에게 사실상의 ‘백기 투항’을 하는 언론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ABC 방송은 최근 트럼프 측이 제기한 소송을 종결하는 조건으로 1500만 달러(약 219억원)의 합의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앞서 ABC 방송 앵커 조지 스테퍼노펄러스가 트럼프 당선인의 28년 전 성추행 혐의 사건에 대해 ‘강간’이라고 표현했는데, 트럼프 당선인 측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ABC 방송은 합의금을 지불키로 하는 동시에 유감을 표명하는 사과문도 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방송 사업자 재승인 등을 의식한 ABC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당선인의 언론을 상대로 한 줄소송에 지지자들은 환호하지만, 거액의 송사가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다수 언론이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부정적 내용을 보도하는 데 있어 위축되거나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고위 공직자가 언론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에 따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언론을 상대로 한 고위 공직자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실질적인 악의’(actual malice) 유무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례(1964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는 보도 기관이 거짓임을 알면서 사실인 양 보도했거나, 거짓일 가능성을 무모하게 무시했음을 원고가 입증해야 한다고 규정한 판결이다.

저널리즘보호 단체 ‘CUNY’의 책임자 조엘 사이먼은 ‘더힐’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디모인 레지스터 상대 소송에 대해 "‘실질적 악의’ 기준에 의거해, 선의로 한 보도는 보호되기 때문에 (트럼프의) 법적 승소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하지만 소규모 언론사이거나 자본이 부족한 언론사의 경우 소송에서 법적 방어가 매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 소송 전문 변호사 데이비드 코르제닉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언론을 상대로 한 거액 소송에 대해 "비용과 피로감으로 몰아세워 언론의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 목표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남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