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가로주택정비사업지가 이주·철거까지 완료됐으나 현재까지 착공을 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조합 제공

계약 후 불공정 요구 ‘비일비재’
소송비 걱정에 해지 못해 이중고

“착공 이후 물가가 3% 오를 때마다 공사비 협상을 다시 하자.” “입주 시 하자가 있어도 비용 지급을 미뤄선 안 된다.” “공사 현장 정보는 제공 불가하며 CCTV 현장 설치 조항은 삭제하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은 시공순위 40대 A 건설사가 이 같은 조항을 포함한 공사도급계약서 수정을 요구하면서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3586㎡ 부지에 68가구 한 동짜리 아파트가 들어서는 해당 사업은 2022년 A사가 시공사로 선정된 이후 지난 10월 이주와 철거절차가 완료됐다. 하지만 이달 초 시공사가 공사비를 18.62% 인상하고 계약서를 대폭 수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조합과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건축 분담금이 기존 약 2억 원에서 4억 원으로 폭등하는 건 둘째치고 이런 불공정한 계약서에 어떻게 사인을 하나”라며 “다른 시공사를 찾으려고 해도 소송 비용과 공사 지연을 감내해야 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준 J&K 도시정비 대표는 “터파기까지 다 해놓고 공사비를 2배로 부르는 사례가 요즘 비일비재한데 특히 사업 규모가 작은 가로주택정비사업의 경우 조합이 더 불리하다”며 “A 기업의 계약서 수정 요구는 그중에서도 도를 넘어선 고압적 행위로 보인다”고 말했다.

A 기업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계약을 진행하다 보면 협의 과정에서 내용을 조정할 수도 있다”며 “처음 요청한 계약서에 대해 조합과 의견 조율을 해서 착공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조합과 시공사와의 갈등이 도심 주택 공급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안이 지난 11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청 시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공공의 공사비 검증 및 분쟁 조정 절차를 거치게 됐지만, 사업 규모가 작은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영주·이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