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인 학살’ 첫 국가배상 판결

2심 재판부 “유족 15명에 18억여원 배상”

부산=이승륜 기자 lsr231106@munhwa.com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경남 산청·함양 민간인 학살 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2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가장 큰 이유는 소멸시효 기산점에 대한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23일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데는 앞서 국가 배상 결정이 내려진 거창 양민 학살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부산고법 민사5부(부장판사 김주호)는 이날 산청·함양 사건 유족 15명에게 총 18억2583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사망자 본인 1억 원, 배우자 5000만 원, 부모와 자녀 각 2000만 원, 형제자매 1000만 원으로 위자료 기준을 책정한 뒤 상속 관계와 지분에 따라 유족별로 4000만 원에서 4억 원까지 배상액을 결정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이 민법상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 단기 소멸시효인 3년을 넘긴 2023년에야 소송을 냈기에 소송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봤다.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 종료를 소멸시효의 기점으로 간주한 것. 반면 2심 재판부는 산청·함양 사건과 유사한 거창 민간인 학살 피해자 손배소(4차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2022년 11월 이 사건에 대해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파기환송한 바 있다.

2심 재판부는 “거창 사건 유족들이 최초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한 2001년부터 4차 소송이 제기된 2016년, 2017년 전까지 피해를 법률상 구제받기 어려웠다”며 “4차 관련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통해 비로소 원고들은 산청·함양 사건과 관련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일반 채권에 비해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다는 사실도 채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판단에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산청·함양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국가 배상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지만, 정부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김재생 산청·함양 양민 희생자 유족회장은 “74년 만에 판결을 받았지만, 유족 732명 중 생존자는 이제 164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며 “더 이상 유족을 괴롭히지 말고 특별법을 제정해 일괄 배상을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