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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전람회 ‘기억의 습작’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이런 질문은 보통 인터뷰 끄트머리에 나온다. 누적된 행복의 더미에서 굳이 1등을 추릴 필요가 있을까. “돌이켜보면 오늘 만남도 행복의 리스트에 포함될 거예요. 행복과 감사는 같은 말이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은 ‘가장’에 집착한다. ‘가장’은 꼭짓점의 끝이다. 삶의 가장자리에 행복을 매달아둘 이유, 아니 여유가 그대에게 있는가.

행복한 순간이 슬픈 시간과 겹칠 때가 있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최고의 시간은 최후의 시간과 만나게 돼 있다. 30년 전으로 돌아가자. 1994년 대학가요제는 처음으로 야외(고려대 녹지 캠퍼스 대운동장)에서 생방송(10월 15일)으로 진행됐다. 이전(1977∼1993년)까지는 체육관 아니면 방송사 공개홀이었다. “강변가요제엔 강변이 보이는데 대학가요제엔 왜 대학이 안 보이죠?” 경험 많은 국장님은 걱정도 많았다. “비라도 내리면 어쩌려고.” 철없는 PD는 결연한 의지로 답했다. “비가 내리면 오히려 시청률이 오를 겁니다. 흔히 볼 수 없는 그림이니까요.”

‘건강한 시대정신과 참신한 실험정신’을 기치로 전국을 돌며 음악을 사랑하는 대학생들을 모았다. 문제는 일기예보. 리허설 때만 해도 흐리긴 했지만 빗방울은 없었다. 혹시 모르니 40인조 오케스트라는 비상 천막 안으로 이주를 마쳤다. 뉴스데스크가 끝나고 밤 9시 40분 생방송이 시작됐다. 하늘은 미리 큐시트라도 입수한 듯 그때부터 물을 쏟아부었다. 카메라에 잡힌 바닥은 빗물로 미끌미끌했다. 운동장은 음악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고 관객들은 우산을 집어 던졌다. 축축하던 화면은 기어이 광대한 바다로 변했다.

팸플릿에 적힌 출연자 중 1부 경연에서 ‘할머니의 계란밥’을 부른 참가번호 6번 이재호(동국대)는 나중에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요절했다. 멋진 화보 사진을 찍어주겠다던 약속은 지키지 못했어도 영정사진 속 그의 환한 미소는 내 기억 속에 갇혀 더 이상 늙지 않는다. 2부 특별공연(‘한국 대학 가요사’)에서 운동가요의 대명사로 알려진 ‘타는 목마름으로’를 만 명의 합창단과 함께 부른 가수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 불귀의 객이 됐다. 내 휴대전화 속에는 폭우에 저항하는 불멸의 노래가 제목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고스란히 저장돼 있다.

3부는 직전(1993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전람회(김동률 서동욱)의 축하 무대로 꾸며졌다. 빗물이 춤추는 건반 사이로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던 동그란 안경의 건축학도 김동률과 흰 와이셔츠에 기타를 단정히 맨 ‘90년대 모던보이’ 서동욱은 지금 봐도 탄성이 나올 만치 아름다운 2S(투숏)를 만들어냈다. 생방송이 끝나고 중계차에서 달려 나와 ‘혹시 감기 걸리면 어쩌지’ 미안하고 감사해서 물었더니 빗물로 세수한 미소로 인상적인 답을 남겼다. “진짜로 잊지 못할 기억의 습작이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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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요제는 투(2)트랙의 앙상블이다. 음악으로 세상을 흔들어보려는 자와 청춘의 기억을 노래로 새기려는 자. 전자가 김동률이라면 후자는 서동욱이다.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스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기억의 습작’) 사람이 죽으면 땅속에, 아니면 항아리 안에 들어가는 것 같지만 실은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입주한다. 지난 30년 동안 나에겐 ‘우중 댄디보이’로 기억되던 서동욱은 앞으로 30년 아니 그보다 훨씬 긴 시간 그 자리에 남아서 연주할 것이다. 빗속에 그를 감금했던 PD가 묻는다.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기억의 습작’)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