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2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연합뉴스

■ ‘한강 효과’ 전후… 2024 ‘5가지 트렌드’

한국시 판매량 56.4% 급증
김애란·정유정·최진영 소설
프로이트 철학서 등도 인기
서울국제도서전 15만명 몰려
‘필사노트’는 베스트 셀러로

‘기승전 한강’일까. 정치, 자기계발, 소설과 철학 등 다양한 분야가 각축전을 벌이던 올해의 출판시장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한강의 ‘소년이 온다’로 마무리됐다. 수상 후 약 두 달간의 판매량으로 ‘소년이 온다’는 연간 1위를 차지했고 뒤이어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2위와 3위에 올랐다. 물론 노벨문학상 수상과 이후의 ‘한강 효과’가 올해 출판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국내의 크고 작은 출판사들이 보여준 바쁜 움직임과 올해 출판시장의 ‘기승전’을 살피기 위해 출판계 트렌드를 5가지 키워드로 짚어봤다.

◇텍스트 힙

출판계에서 올해의 단어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텍스트 힙’을 고를 수 있다. 10·20세대를 중심으로 책 읽기가 하나의 ‘힙’한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젊은 독자가 출판계 지형을 바꿨다. 대표적으로 이들이 즐기는 쇼트폼 콘텐츠를 닮아있는 책이 큰 인기를 얻은 것. 특히 간편하게 읽을 수 있고 짧고 감각적인 한국시는 올해 전년 대비 56.4%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수치로도 ‘힙’을 증명했다. 힙한 독자들의 유입과 함께 출판사의 마케팅 방법도 변했다. 올해 상반기부터 출판사들은 팝업스토어를 열기 시작했고 연말까지 ‘프란츠 카프카 기일 카페’와 ‘시의 집’과 같은 각양각색의 매장이 성수, 마포 등 지역에 차려졌다.

◇한강

한강 작가의 수상은 그 자체로 한국문학의 거대한 성취이지만 이를 통해 서점가에 ‘문학의 시간’을 가져왔다는 의미도 갖는다. 올해 한국문학 가운데 양귀자의 ‘모순’과 최진영의 ‘구의 증명’ 등이 상반기를 이끌고 김애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정유정의 ‘영원한 천국’ 등이 하반기에 큰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한강 효과’가 더해져 올해 소설 분야는 전년 대비 35.7% 신장했다. 다만 과거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와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등 인기작을 필두로 잘 나가던 에세이 시장은 올해 큰 성과가 없었다. 2020년대에 들어 활발해진 앤솔러지 출간은 그 방향을 조금 바꿔 현재도 순항 중이다. 기존엔 디스토피아 같은 키워드 중심이었다면, 올해는 한국 사회상의 단면을 다룬 ‘킬러 문항 킬러 킬러’와 ‘소설, 한국을 말하다’와 같은 앤솔러지가 출간됐다.

◇쇼펜하우어

베스트셀러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비롯해 철학과 삶을 결합한 대중철학서의 인기가 올해도 이어졌다. 최근에는 쇼펜하우어에 이어 니체와 프로이트 등의 학자에 관한 책이 등장하고 있다. 경제·경영, 자기계발 분야는 팬데믹이 끝난 후 시작된 하락세가 이어졌다. 올해 베스트셀러 차트만 살펴봐도 그렇다. 지난 4월 종합 1위에 올랐던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베스트셀러가 나오지 않았고 매년 연말마다 사랑받던 베스트셀러 시리즈 ‘트렌드 코리아’도 2주간 종합 1위를 지키는 데 그쳤다. 이에 서점가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경제·경영, 자기계발 분야 쪽 유튜브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주요 독자들이 이동한 것 같다”며 “반면 철학 분야는 책이라는 매체를 선택하는 독자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도서전

도서전은 출판계 행사를 넘어 하나의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6월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 외에도 지역 도서전 또한 성황리에 마감됐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15만 명의 관람객이 찾은 가운데 주말에는 입장 인원이 몰려 강남 코엑스 1층부터 대기하는 관람객이 몰리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8월 개최된 ‘군산 북페어’의 경우에도 성공적으로 관람객 6600명을 모았다. 이 외에도 올해 새롭게 시작한 부산국제아동도서전과 2회를 맞은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 등이 지역의 문화행사로 호평을 받았다.

◇필사

올해 독서 문화에서는 두각을 드러낸 활동이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필사다. 7월 종합 1위를 기록해 화제가 됐던 책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는 연말까지도 큰 사랑을 받아 연간 베스트셀러 12위에 올랐다. 이 같은 이례적인 기록과 함께 올해에는 필사책만 200여 종 가까이 출간됐다. 그 종류도 다양한데 아이유 가사 필사부터 니체 필사, 심지어는 이집트 상형문자 필사노트까지 등장했다. 곳곳에서는 독자들의 모임이 많아졌다. 올해 4월 민음사에서 운영하는 북클럽은 하루 만에 회원 5000명이 몰리며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