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18일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2007년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최종협상이 열렸던 서울 용산구 소월로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향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 현안 인터뷰 -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미중 ‘정상무역’ 이미 무너져
G2 디커플링… 세계화 종말
韓,中과는 ‘호혜평등’ 설정을

트럼프 2기 통상, 2년간 속도
관세·자국산업 보호 등 초점

세계 경제에 책임있는 美가
막무가내로 가지는 않을 것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절반에 육박하는 미국과 중국, 세계 1·2위 국가가 서로 협조하지 않고 디커플링(비동조화) 하면 거기서 이미 세계화는 깨진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때 세계 경제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국제 자유무역 구조가 변하고 있다. 견고하던 세계시장의 틀이 쪼개진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전조 현상이 있던 상황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두 번째 백악관 입성을 앞두고 세계 무역 시장의 블록화는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각국·지역 경제권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삭풍이 불기 시작하던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한국 통상역사의 산증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만났다. 한·미 무역협정(FTA), 한·유럽연합(EU) FTA 협상을 이끌었던 ‘FTA 전도사’다. 그의 입에서 세계화의 종말이란 지적이 나올 정도이니, ‘수출 대국’을 향해가던 한국의 통상 환경에 비상이 걸렸다는 현실이 절감됐다.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 후 미국이 중국에 대한 최혜국(MFN) 대우를 철회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양국 간 통상 마찰은 자명해 보인다.

“미국 용어로는 PNTR(항구적 정상무역관계)이라고 하는데, 그걸 미국이 중국에 부여한 게 2000년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들어올 때였다. 사실은 미·중 간의 MFN은 이미 무너졌다고 본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핀셋처럼 중국에 관세를 물리고 중국은 보복을 했다. 그것은 MFN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중에 다시 합의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때 이런 조치가 다시 소환될 수 있다. (중국산 제품에) 60% 과세를 때리기 시작하면 사실상 MFN도 물 건너간 것이다. 다만 법적으로 그걸 취소하냐 마냐의 문제가 있기는 하다.”

―한국 수출에 중요한 미·중 사이에서 그런 마찰이 생기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두 나라가 디커플링 하면, 이미 세계화는 깨진 것이라고 봐야 하고, 더 이상 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도 이제 잘 없다. 그런 사조는 물 건너갔다. 국익우선, 각자도생이라는 새로운 시대사조가 들어섰다. 그래서 그러면 우리는 중국과 어떡해야 하는가? 경제·외교적으로 중국이 늘 하는 얘기가 ‘호혜평등’이다. 그런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 중국이 우리 기업에 취한 조치, 관광 제한 조치 등을 보면 호혜평등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이 말 그대로 호혜평등의 원칙에서 이웃 나라인 한국과의 관계를 설정해 간다면 우리가 중국과 잘 못 지낼 이유가 없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이지만, 한·중 간의 호혜평등이 그걸 저해하는 것은 아니다. 또 미·중이 디커플링 하면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가야 한다? 물론 비중의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한·중의 이웃 나라 간 호혜평등 프레임 안에서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미·중 관세 전쟁이 촉발될 경우, 다른 국가 간에도 보편관세가 상호 부과되는 ‘글로벌 관세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는지.

“일이 거기까지 진행이 될까? 그렇게까지는 안 갈 것으로 난 본다. 그렇게 되면 세계 경제가 수십 년 후퇴할 것이고, 경제뿐만 아니라 현상에 큰 변동이 생기고 정치적으로도 파동이 생긴다. 현상 변동의 제일 위험한 것은 무력 충돌, 전쟁이다. 그런데 그런 정책을 구사한다고 하면, 세계 지도적 위치의 국가라고 하기 전에 세계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미국이 세계사를 그렇게 끌고 갈지 의문이다. 책임감 있는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4년 후 연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정책을 꼽는다면.

“2기 행정부가 자신감 있는 정책을 추진할 텐데, 중간선거 격인 2년 후의 하원 선거 이전인 초반 2년이 나름대로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시기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내년 1월에 취임하면 첫 2년 동안 굉장히 넘치는 자신감을 갖고 속도감 있게 정책을 추진할 것이란 견해에 100% 동감한다. 크게 2가지 정책을 보고 있다. ‘시장을 막아야겠다’고 할 때 취하는 조치가 우선 국경 조치이고, 즉 관세다. 마찰이 고조되면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도 악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책을 책임 있게 수행할 사람이 선택할 정책은 아니다. 다만 (관세 조치를) 안 하지는 않을 것이고 타기팅, 품목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충분히 할 수 있다. 우선 무역적자가 큰 나라인 중국, 멕시코, 일본, 베트남 등이 조치 대상이 될 수 있고, 한국을 제일 먼저 타기팅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또 하나 취할 수 있는 것이 자국 내 산업 보호 정책이다. 대표적으로 칩스액트(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있다. 그 많은 기업이 거기에서 나오는 지원책을 보고 미국에 투자도 하고, 경영계획도 세우고 해왔던 것이 지난 바이든 정부 때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그게 그대로 진행될 것인지는 관심 있게 봐야 한다.”

―이번 미국 대선을 계기로 미·중 또는 한·미 통상 현안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유무역 체제가 약화하고 보호무역주의와 경제블록화가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수출을 중시하는 한국으로서는 악재인데, 한국의 장기적 통상 정책은 어떤 방향성을 취해야 하는가.

“힘 있는 사람이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 국제사회다. 그런데 정말 숨이 막힐 정도의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짧으면 2년, 길면 4년이다. 미국도 책임감 있는 당으로서 공화당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1인 독재 체제가 아니다. 그 사람들이 세계 경제를 몇십 년을 후퇴시키고, 거기에 따라서 미국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그런 형태의 정책을 그대로 취해갈 것인가. 그렇게까지 막무가내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미국에 그런 얘기를 계속 해줘야 한다. 협상의 자리에서든, 대화의 자리에서든 ‘방위나 경제에 있어 너희가 어렵다면 우리도 이야기를 듣고 해소할 용의가 있다, 그렇지만 세계 경제를 볼모로 마구잡이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해줘야 한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