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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전쟁·테러에 박살나는 문화유산

러 폭격에 우크라 유적 초토화
오데사 축일성당 등 438곳 파괴

1400년된 가자 오마리 모스크
이스라엘 무차별 공격에 쑥대밭

탈레반 통치 아프가니스탄·IS
종교·신념 갈등이 파괴 행위로

이미지 크게보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 있는 정교회 축일성당이 지난해 7월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지붕이 무너지고 기둥이 부서지는 등 폐허가 된 모습. AFP 연합뉴스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지속되고 있는 ‘두 개의 전쟁’ 등 세계 각지에서 발발한 각종 전쟁으로 인해 수백·수천 년 넘는 역사를 가진 해당 지역의 문화유산들이 ‘바람 앞 등불’ 처지에 놓였다. 아직도 포성이 멈추지 않고 있는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문화유산들이 파괴되고 있는 상황이며, 가까스로 휴전이 합의된 레바논에서도 언제 전투가 재개될지 몰라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이기도 한 중동의 경우 의도적으로 문화유산을 노려 공격한 각종 테러단체들의 만행으로 인한 상처도 깊다. 이에 유네스코와 각국 정부뿐 아니라 고고학자들까지 나서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두 개의 전쟁에 속수무책인 중동·유럽 문화유산들 = 4일(현지시간) 유네스코는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가자 전쟁 이후 지난 9월 17일까지 약 1년 동안 위성 사진으로 식별 가능한 120곳의 가자지구 문화 유적지 중 1400년 된 오마리 모스크 등 69곳이 파괴된 상태라고 밝혔다. 파괴된 문화 유적지는 △종교시설 10곳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지닌 건물 43곳 △문화재 보관소 2곳 △기념물 유적지 6곳 △박물관 1곳 △고고학 유적지 7곳 등이다. 특히 가자지구가 역사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길목에 위치해 있고, 과거 기독교 영향권 안에도 있었다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남아있던 헬레니즘과 기독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문명의 흔적이 이스라엘군의 포격과 공습에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로마, 유럽 등 고대 문명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어 또 다른 ‘문명의 보고’로 불리는 레바논의 상황도 비슷하다. 레바논에는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티레가 있을 뿐 아니라 세계문화유산만 5개가 지정됐을 정도인데, 레바논 전역을 겨냥한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거세지며 문화재 파괴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에 유네스코가 나서 레바논 내 34개 문화유산을 ‘임시 강화 보호’ 대상에 지정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27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휴전이 발효되며 우려는 일정 부분 해소됐으나, 언제든지 휴전이 깨지고 다시 전투가 재개될 우려가 있어 레바논 정부와 고고학자들은 유적지 보호 작업에 나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3년 가까이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문화유산 역시 위기에 처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유네스코는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이후 우크라이나 내 438곳의 문화 유적지가 파괴됐다고 전했고, 미콜라 토치츠키 우크라이나 문화부 장관 역시 러시아군이 박물관·극장·도서관 등 1700곳이 넘는 문화 시설까지 파괴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 있는 정교회 축일성당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에 파괴되기도 했다. 1794년 건설된 축일성당은 구소련 시절 철거됐다가 소련 붕괴 이후 재건됐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관광명소였다.

토치츠키 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문화유산과 시설들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있다며, 이는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업적들과 국가적 정체성을 지워 역사를 다시 쓰려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우크라이나 정교회 축일성당이 파괴되기 전 내부모습. 우크라이나 국방부 X 캡처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단체의 만행에 상처 입은 중동 유적지들 = 2010년대 중반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 일부를 점령하며 세력을 확장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는 중동의 문화 유적들을 의도적으로 파괴한 전력을 갖고 있다. 당시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던 IS는 과거 이슬람 전파 전에 만들어진 중동의 문화유적들이 ‘우상 숭배’의 흔적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을 파괴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이라크 모술에서 IS에 의해 파괴된 유적만 28곳에 이를 정도다. IS는 고대 기독교 유적과 메소포타미아 유적들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시아파 무슬림 유적까지 표적으로 삼았다. 같은 이슬람교임에도 수니파 극단주의를 내세우는 자신들과 종파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같은 수니파더라도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소수민족의 문화유산은 가차 없이 파괴했다.

오랜 기간 탈레반의 통치를 받아온 아프가니스탄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1970년대에 아프가니스탄 국립박물관(카불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문화유산의 70%가 탈레반이 등장한 1990년 중반에 사라졌다. 2001년에는 당시 탈레반 최고 지도자인 뮬라 무하마드 오마르가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상(像)과 비(非)이슬람 종교물을 파괴하라는 포고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당시 박물관에 탈레반 고위 관료를 포함한 10여 명이 들이닥쳐 유물 진열장을 망치로 깨뜨리고 조각상들을 파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들은 당시 2500여 점의 문화유산을 파괴했는데, 그중 가장 큰 사건은 2001년 3월 각각 55m, 36m 높이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바미안 석불상 2점을 폭파한 일이다.

◇각국 정부와 유네스코, 문화재 지키기 ‘안간힘’ =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로 각국의 문화유산이 위기에 처하자 각국 정부와 유네스코는 문화재 파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네스코는 40개국 정부, 국제기구와 협력해 우크라이나에서 파괴된 문화재 복구를 목표로 하는 중·장기 계획을 설립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는 동시에 위성사진 분석 등을 활용해 가자지구 문화유적지 현황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IS의 세력이 약화하기 시작한 지난 2018년부터 이라크 등에서 테러로 파괴된 문화재 복구 작업에도 착수했으며, 1954년 헤이그 협약(무력 충돌 시 문화재 보호 협약) 등을 근거로 이스라엘 등 중동지역 갈등 당사국들에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andre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