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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의 개혁사상과 문명론
도현철 지음│지식산업사


여말선초, 격동의 시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유학자 14명의 다채로운 사상을 담아낸 책이 출간됐다.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의 정치사상을 오랜 시간 묵묵히 연구해 온 사학자인 저자는 성리학의 수용과 확산 과정을 중심으로 유학자들의 학문적 도전과 대응을 꼼꼼히 짚어냈다.

원의 간섭과 왜구 출몰, 그리고 나라를 지탱하는 백성들의 민생 파탄. 내우외환의 질고 속에서 뜻있는 선비들은 성리학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저자는 13세기 말 안향(1243∼1306)이 성리학을 수용한 계기에 대해 원나라에서 한화정책을 실시하고 성리학이 관학이 됐던 것이 원나라와 고려가 밀접한 관계에 들어선 시기와 맞물렸던 것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역사 속의 인간은 사회적, 시대적 조건 속에서 이해된다"는 전제 아래 유학자들의 동향과 사회상을 조응시켜 나간다. 안향부터 이색(1328∼1396), 정몽주(1338∼1392)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불린 길재(1353∼1419)에 이르는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을 아우르며 흘러간다.

책은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변화와 변동이 진행되는 시기를 살았던 유학자 지식인들이 "각자가 처한 현실과 대응 논리에 따라 서로 다른 정치적 행동을 보여줬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이색과 정몽주는 성리학을 통해 고려 왕조를 유지하고 재건하려 했으나 정도전(1342∼1398)은 성리학의 개혁적 측면을 발굴하고 새로운 왕조 건국으로 이어 나갔다는 것이다.

왕조 교체기 지식인들의 현실적 고뇌와 극복 노력은 물론 지금껏 비교적 조명되지 않았던 학문적 분투까지 책은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성균관에서 학맥을 함께하는 사대부들이 북원 사신 영접에는 반대하며 외교적 자주성에는 한목소리를 냈지만 제도 개혁과 요동 정벌 등 내부적 정치 사안에는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점을 주목한다. 또한 성리학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했던 학자들의 모습도 포착한다. 정도전, 조준과 함께 전제 개혁을 주장한 개혁파 사대부 윤소종이 이색과의 관계를 잊지 못하여 이색 사형 촉구 상소에 서명하지 않았던 점은 대의멸친의 성리학적 이념보다는 현실에 기울어진 사례로 제시된다.

마침내 책은 새 나라를 꿈꿨던 유학자들의 사상을 강조하며 절정을 맞이한다. 저자는 대신들이 고려조정 유지냐 왕조교체냐를 두고 견해차가 있었으나 유학자들의 미래 구상은 대개 하나로 수렴됐다고 말한다. 그것을 ‘문치사회’로 명명한다. 안향, 이제현, 이곡의 군주수신론, 이곡-이색-권근으로 이어지는 경 중시의 수양론, 이제현-박상충-이색-권근의 예제 정비, 정도전의 재상정치론의 궁극적 도달점은 덕치와 예치로써 학술 진흥과 문물을 정비하는 유교적 이상향인 것이다. 정도전, 권근, 하륜, 조준 등 개혁가들은 육조직계제의 중앙집권체제와 법제 정비, 학교와 과거제를 통한 유학이념의 보급 같은 구체안을 가지고 조선시대 문치의 장을 열어 갔다. 576쪽, 4만3000원.

장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