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누적 적자와 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던 한국전력공사를 떠맡은 김동철 사장이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전기요금 정상화를 통해 재무 안정화 토대를 마련하는 등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제공

■ Leadership - 김동철한국전력공사 사장

취임 당일 전사 비상경영 선포
연휴도 반납한 채 24시간 근무

‘역마진’ 전기요금 현실화 위해
국회의원 · 지자체장 두루 만나

3분기까지 영업익 5.9조 흑자
작년동기 6.4조 적자서 ‘반전’

“한전의 주인은 우리 임직원들”
틈나는대로 ‘주인의식’ 고취도

“우려도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반전이다.”

천문학적 재무위기에 빠져 있던 한국전력공사의 구원 투수로 김동철 한전 사장이 취임한 지 1년여가 흐른 뒤 관련 업계의 반응은 이렇다. 지난해 9월 역대 한전 사장으로서는 창립 62년 만에 처음으로 정치인 출신 인사가 선임됐을 때 에너지 업계 안팎에서는 ‘전력이나 에너지 분야에 관해서는 비전문가인데……’라는 시각이 제기됐다. 게다가 한전은 당시 누적 적자와 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던 시기였기에, 김 사장을 둘러싼 주변의 시각은 분명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우세했다.

◇위기 돌파의 시작 = “지금 한전은 사상 초유의 재무위기로 기업 존폐를 의심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20일 한전이 새로운 사장을 맞이해 잔칫날 같은 분위기였어야 할 취임식장에서 김 사장의 취임 일성은 기존 한전 직원들의 ‘뼈를 때리는’ 이야기로 시작됐다. 당시 김 사장은 “정말 뼈 아픈 소리지만, 그동안 한전이 공기업이라는 보호막, 정부보증이라는 안전판, 독점사업자라는 우월적 지위에 안주해온 것은 아니겠냐”며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미래대비를 소홀히 한 채 무사안일했던 것은 아니냐”고 일갈했다.

실제 한전은 이전 몇 년간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전기요금 인상 타이밍을 놓치며 당시 기준으로 총부채 202조 원, 누적적자 43조 원을 안고 있었다. 이에 따른 하루 이자비용만 122억 원 수준이었다. 말 그대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였던 것이다.

직원들에게 경종을 울린 김 사장은 취임 당일에 전사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사장실에 ‘워룸’(War Room, 전시 작전지휘소)을 조성했다. 취임 다음 주가 그해 추석 연휴였으나 휴무도 반납한 채 회사에서 24시간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혁신과 인력 효율화, 추가 자산매각 등 재무 건전성을 위한 특단의 자구책 이행에 더욱 속도를 내기 위해서였다.

◇고조되는 기대감 = 김 사장 취임 즈음 산업계와 정치계에서 그에게 건 기대는 ‘위기를 기회로 삼는 돌파력’이었다. 이를 통해 김 사장이 재무위기 개선뿐만 아니라 한전의 당면 과제들인 △전기요금 정상화 △전력망 건설의 국가적 과제 완수 △성찰과 소통을 통한 사업구조·기업문화 혁신 등의 적임자가 돼 주길 바랐다. 이에 김 사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현장을 다 둘러보겠다”며 현장경영과 소통경영을 펼쳤다. 또 역대 사장들이 선뜻 추진하지 못한 기업체질 개선, 전기요금 외의 수익창출 같은 사업구조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재무위기 극복, 국가전력망 확충 등의 핵심과제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한전 내부의 평가다.

특히 재무위기 극복은 현실화되고 있는 성과로 꼽힌다. 김 사장은 한전이 2022년부터 추진해 온 재정 건전화 계획을 이어받아 착실히 이행한 것은 물론, 구입전력비 절감·자산매각·사업조정 등을 통해 기존 계획 대비 목표 수준을 2조8000억 원 상향했다.

올해 3분기까지는 총 9조9000억 원의 재정 건전화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또 재무위기를 초래한 핵심 요인으로 꼽혔던 전기요금도 정상화하고 있다. 사실 전기요금 정상화는 ‘전기요금 인상’을 동반하고 이는 국민 여론의 저항을 초래한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전은 원가보다 싸게 전기를 파는 역마진 상태였다.

이 때문에 김 사장은 언론과 적극 소통하는 것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관계 부처와 여야 국회의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기업인들을 두루 만나 글로벌 전력산업의 급성장과 한전의 역할, 그리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기요금 현실화를 호소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전은 올해 3분기까지 연결기준 5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재무 안정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남은 길은 아직 ‘시험대’ = 올해 1∼3분기 누적 한전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5조9457억 원으로 작년 동기의 6조4534억 원 영업손실에 비교해 흑자 전환 기조가 뚜렷하다. 남은 4분기에도 실적 개선세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기준 한전의 연결 총부채는 204조1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의 202조4500억 원보다 일부 늘었다. 재무 위기 탈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한전의 현 상황에서 전기요금 정상화와 재정 건전화는 서로 맞물린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재무 위기 개선을 위한 한전의 자구노력을 국민이 절감해야 요금 인상을 수반하는 전기요금 정상화에도 수긍할 수 있고, 요금 인상이 이뤄져야 재정 건전성 확보도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요금 정상화와 재정 건전화의 순환 구조는 현재 선순환과 악순환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놓았던 자구책에 대해 속도감 있게 실행력을 높이고 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 더 나아가 전력망 확충이란 난제 해결에 내부 역량을 얼마나 결집할 수 있을지가 김 사장의 향후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양한 직군과 업무, 연령대로 구성된 한전 구성원들과 연간 6000만 건이 넘는 서비스 요청 및 40만 건 이상의 공사가 이뤄지는 전국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 발휘 여부 역시 그의 시험대다. 지난 9월 20일 취임 1년을 맞아 김 사장이 발표한 담화문엔 ‘원팀’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당시 그는 “‘공기업엔 주인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며 “한전에는 주인이 분명 있다. 한평생 한전의 역사를 직접 만들어갈 바로 우리 임직원들”이라고 했다. 이달 들어서는 소통 강화를 위해 2만3000여 명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회사의 현안 이슈를 담은 ‘CEO 직접 소통 메시지’라는 제목의 휴대전화 메시지도 발송 중이며 누구라도 사장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도록 직통 계정을 공개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이 같은 김 사장의 행보에 대해 “임직원들에게 틈나는 대로 주인의식을 강조하며 경영서신, 소통회, 사내 메신저 등으로 형식을 가리지 않고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지난해 11월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 및 전기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하기 위해 정부세종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광주서 4選’ 했던 국회의원… 취임 1년만에 ‘에너지산업의 전사’ 변신

■ 한전 사장 이전의 김동철

서울대 법대 尹대통령 5년 선배
금융권서 일하다 정치권에 입문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한때 정치권에서 ‘호남철’이라고 불리기도 한 광주 지역의 유력 정치인이었다. 광주 광산구을 지역구에서 내리 4선을 하며 호남고속철도 조기 건설에 큰 역할을 하는 등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전력망 혁신과 ‘K-전력’의 수출을 이야기하는 에너지산업의 전사로 변신했다.

김 사장은 원래 법학도였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그는 같은 과 후배인 윤석열 대통령보다 다섯 학번 위인 74학번이다. 2010년대의 비슷한 시기에 사법부의 정점에 섰던 고영한,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전 대법관과 법대 동기다. 고영한·이상훈 전 대법관과는 광주일고 동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에는 금융권에서 일하다 정치권에 입문했다. 한전 사장 부임 이전까지 김 사장은 17∼20대 국회에 입성했던 한 완연한 정치인이었다. 이 때문에 3선 국회의원 시절인 2014년 에너지 분야를 담당하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했음에도 한전 사장 취임 당시 일각에서는 그의 오랜 정치 생활로 인해 ‘에너지 분야에 관해서는 별다른 경력이 없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데 취임 1년여를 보낸 현재 경영 성과 외에 또 하나의 ‘반전’은 그가 완벽하게 에너지산업의 전사가 됐다는 점이다. 한전 사장으로서의 행보 속에서는 ‘정치인 김동철’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여야 충돌과 주요 인사들의 각종 의혹에 관한 설왕설래가 끊이질 않지만 “회사에서는 정치 얘기를 거의 안 한다”는 것이 한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오히려 김 사장은 국내 전력산업에 관한 원대한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김 사장은 현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대해 “에너지 대전환에 따라 에너지산업이 타 산업을 지원·육성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에너지산업 그 자체가 천문학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그는 “한전은 단순한 전력공급자가 아닌 ‘대한민국 에너지생태계 혁신의 선구자’로 변신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송변전, 배전 등 전력산업 핵심분야의 우수기술력과 국내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직류(DC)배전, 차세대 배전망 관리 시스템(ADMS), 지능형 디지털 발전소(IDPP) 등 에너지신기술 개발과 에너지신사업 활성화, 그리고 해외진출에 더욱 주력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한전은 올해 9∼10월 미국 괌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양광 사업을, 11월에는 다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4조 원 규모의 가스복합발전소 사업을 수주했다.

또 김 사장이 최근 주력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전력망 확충’이다. 틈날 때마다 국회·정부·기업 등을 대상으로 “전력망이 곧 국가경쟁력”이라고 강조하며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또 송전탑 등으로부터의 전자파 우려에 대해서도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면서 “이제 변전소를 근린생활시설로 보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