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문화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폭풍이 거세다. ‘스트롱맨(strong man)’이라 불릴 정도로 강한 추진력을 가진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당초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깻잎 한 장 차이’ 승부를 펼칠 것이란 전망은 완전히 틀렸다. 해리스의 완패다. 30여 년간 미국 여론조사 업계에서 실력자로 정평 난 앤 셀저 ‘셀저 앤드 컴퍼니’ 대표는 해리스의 역전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선거 결과 앞에서 결국 지난 17일 은퇴를 선언했다. 완패를 당한 대상은 또 있다.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뜻인데, 최근 몇 년 사이 다양한 영역에서 거듭 제기된 PC주의에 대해 “과연 무엇이 올바르다는 것이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PC주의의 기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19세기 미국의 노예제도 폐지 운동과 여성 참정권 운동을 출발선으로 보기도 하고, 20세기 초반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짖었다는 주장도 있다. 2000년대 전후 온라인상에서 PC주의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PC주의는 충분히 의미 있는 외침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특정 계층에 대한 차별을 없애자는 취지다. 문제는 ‘적정선’이다. 미국 대선 직후인 지난 7일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해리스 후보는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성부 출연 허용, 경찰 예산 축소 등 과도한 PC주의를 내세우는 바람에 많은 표를 잃었다’고 꼬집었다. PC주의가 공정과 평등을 강조하는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정작 평범한 사고를 가진 다수를 기득권층으로 내몰고 ‘역차별’ 대상으로 삼는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 같은 맹목적 PC주의는 지난 1세기 동안 전 세계 어린이들의 동심을 보호하고, 키덜트(kid+adult)들의 꿈을 지지하던 글로벌 콘텐츠 기업 월트디즈니의 아성도 흔들었다. PC주의에 입각해 유색인종과 소수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그 결과 ‘흑인 인어공주’나 ‘라틴계 백설공주’ 등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는 원작의 설정과는 크게 달랐기 때문에 ‘원작 훼손’ 논란이 불거지면서,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PC주의를 위한 PC주의’라는 비판에 부닥쳤다. ‘백설공주’의 주연을 맡은 배우 레이철 제글러는 대선 직후 자신의 SNS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트럼프와 그에게 투표한 사람들에게는 깊고 깊은 질병이 있다”면서 ‘FuXX’이라는 욕설을 내뱉었다가 사과했다. 혐오에 반대하는 PC주의에 입각해 주인공으로 발탁된 배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며 또 다른 혐오를 키운 셈이다.

디즈니의 PC주의는 온건하게 시작됐다. 1990년대 말 동양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뮬란’을 제작하고, ‘겨울왕국’과 ‘인어공주’의 주인공을 주체적 인물로 그렸다. 이 건전함에 호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변질됐다. 그동안 디즈니를 즐기며 현시대를 일궈온 기성세대의 가치를 부정하고 그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내몬 셈이다. 뉴욕타임스가 ‘PC주의 광풍은 사라졌다’면서 그에 따른 민심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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