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72년 구로공단 해외수출공업단지의 가발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의 모습. 국가기록원 자료

■ 고맙습니다 - ‘대한민국 산업화 주역’ 어린 여성 근로자들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식량 원조를 받던 세계 최빈국이었다. 실제로 1953년 국내총생산은 13억 달러였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에 불과했다. 또 1960년대 한국경제는 후진적인 농업경제였다. 농촌인구가 60% 이상 차지했으며, 식량부족으로 보릿고개를 겪었던 시기로 일자리가 없어 대부분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업화로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급속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러한 비약적인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은 국민의 땀과 눈물, 피, 노력의 결과였다.

그중에서도 1960∼80년대 국가산업단지 등에서 일했던 어린 여성 근로자(여공)들의 눈물과 땀 등의 헌신·희생은 참으로 컸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여러 공간 속에 그 업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다시 말해 그 여공들은 대한민국 산업역군으로서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끈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그들은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낯설고 물선 타향 객지에서 낮에는 여공으로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녔다. 여공들은 힘들고 고달프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쪽잠을 자가며 그렇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는 등 기꺼이 헌신하고 희생했다. 그렇게 번 돈은 고향집의 살림 밑천이 되거나 부모님의 농사 지을 종잣돈이 됐다. 특히 어린 여공들이 보내준 돈으로 형제자매들이 공부할 수 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에 위치한 대우실업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당시 대우실업에는 직원이 1만 명이 넘고 통근버스가 100대에 이를 정도였다. 나는 그때 가족의 생계와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 대우실업에 다니는 어린 여성 근로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거리낌 없이 주고받으며 허물없이 잘 지냈다. 그래서 그들의 가족을 위한 헌신과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

당시 어린 여공들은 힘들고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의가 정말 대단했다. 특히 앞날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주경야독하는 여공들의 생활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깨달았다. 그중에서도 미숙(가명)이라는 한 어린 여공은 자신이 보내 준 돈으로 공부한 남동생이 훗날 판사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남동생은 누나의 그 값진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고 늘 감사하며 누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항상 해맑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정이 많은 여성 근로자였다. 또 강인하고 삶의 열정 또한 뜨거우면서도 누구보다 겸손하고 공손하며, 당차고 용기가 넘쳤다. 특히 꿈과 희망은 크지만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여성 근로자들이었다. 누구보다도 사람 냄새가 많이 났던 여성 근로자들이었다. 무엇보다 내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고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이다. 당시 밝고 활기차고 수줍음이 많던 그들은 이제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며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나이에 접어들었을 게다. 그분들과 함께한 시간은 내 삶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오늘따라 참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졌던 그분들이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 이 지면을 빌려서 대한민국의 산업역군으로서 산업화를 이끈 주역이자, 오늘의 잘사는 대한민국을 있게 한 주인공이기도 한 그분들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빈다.

문영호(정년퇴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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