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6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3차 장외집회 참가자들이 버린 우비와 플래카드가 쌓여 있다. 김유진 기자

■ 도심점거 집회에 ‘시민 피로감’

광화문·시청서 대형집회 몰려
대중교통 지연·연착운행 속출
앰프 소리에 시민 귀까지 먹먹
고궁나들이 외국관광객도 당황
“민주주의 오히려 파괴 하는것”

“나라가 둘로 나뉘어 주말마다 집회를 하니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아요.”

가을비가 내린 16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가 열린 서울 시청역 인근을 지나던 시민 유모(여·66) 씨는 앰프에서 퍼져나오는 음악 소리에 귀가 먹먹하다며 연신 얼굴을 찡그렸다. 다른 시민들도 단상의 발언자에게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소음 공해를 피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인근 호텔 직원은 “손님들이 호텔로 오기 불편하고, 투숙한 분들도 소음 때문에 편하게 쉬지도 못한다”며 “호텔에 불만이 쏟아지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모(여·70) 씨는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 한 사람을 위해 저러는 게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거 아니냐”고 언성을 높였다.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서 집회·시위는 일상이지만, 최근 들어 주말마다 수만 명 규모의 대형 집회가 몰리며 시민들의 피로가 한층 가파르게 쌓이고 있다.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를 내걸고 3주 연속 집회를 연 민주당은 오는 23일에도 4차 집회를 추진하고 있다. 16일 민주당 집회 앞뒤로는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 집회,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 시민행진이 이어졌다. 보수 진영에선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대국본)·자유통일당 등이 이 대표 구속을 촉구하며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날 민주당 등 범야권 집회에 모인 인원은 모두 2만5000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지난 15일 이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1심의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에도 불구하고 당원과 열성 지지층 외 일반 시민이 본격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는 양상이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오히려 교통난과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김윤경(여·47) 씨는 “25분째 버스를 기다리는데 전광판에 ‘곧 도착’ 표시가 뜬 뒤에도 20분을 더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한복을 차려입고 고궁 나들이에 나선 관광객들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장모(15)·이모(15) 양은 “도로를 막아놓아 교통이 어렵고 시끄러워 불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고 싶은 식당을 찾아왔다는 20대 커플은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보수 단체 집회 역시 시민들에게 불편을 안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김소연(여·28) 씨는 “충북에서 와서 경복궁을 구경하는데 ‘이재명 감방 가라’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며 “외국인들 눈에 한국이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근처 성당에서 너무 시끄러워 나왔다는 이수혁(30) 씨는 “시위 자체는 합법이지만, 도로를 점거하며 저렇게 시끄럽게 하면 오히려 저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반감을 갖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20일엔 앞서 경찰관 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가 전국 농민대회와 함께 2차 총궐기를 예정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 우려도 나온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지만 주최 측이 질서유지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그 책임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재연·김유진·노수빈 기자 jae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