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동 경제부 부장

찬바람이 불면서 예산안 심의 시즌이 돌아왔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10%대까지 주저앉은 상황에서 올해 진행될 내년 예산안 심의는 평년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내년 예산안 심의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내년 예산안 국회 통과가 내년 1월 초까지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그만큼 국회에서 여야가 한 치의 양보 없이 충돌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듬해 예산안은 해마다 11월 상임위 심의를 거쳐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 2일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도록 규정돼 있다. 법정 처리 시한에 가까워지면 정부 예산안(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한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몇 년간은 시한 내에 처리되나 싶더니 최근에는 다시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이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23년 예산은 2022년 12월 24일 국회를 통과했고, 2024년 예산은 2023년 12월 21일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두 번 다 법정 처리 시한을 못 지킨 것이다. 그런데 “내년(2025년) 예산은 내년 1월 초에나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기획재정부 추산에 따르면, 올해 국세수입 결손액이 약 30조 원에 달하는 상황”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생토론회를 열어 선심 공약한 예산, 김건희 여사 관련 예산, 검찰과 방송통신위원회, 공영방송 관련 예산에 대해 대대적으로 삭감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국회에서 170석(56.67%)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 예산 등을 쳐내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원하는 예산을 대거 포함시키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여야 합의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이 국회 운영위에서 ‘예산안 본회의 자동 부의’ 규정을 폐지한 국회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한 것이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여야가 11월 30일까지 예산 심의를 마치지 못하면 다음 날인 12월 1일 정부 예산안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야가 예산안과 부수 법안의 심의를 마치지 못해도 자동 부의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국회법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물론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는 자동 부의되더라도 야당이 반대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자동 부의 조항에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예산 관련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꾸려고 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만약 677조4000억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이 내년 1월이 되도록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전년도 예산에 준해 예산을 집행하는 ‘준(準)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 국내외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공조, 인공지능(AI) 등장에 따른 반도체 산업 재편 등 굵직굵직한 변화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나라 살림을 전년도 예산에 준해서 집행하는 퇴행적 행태를 보인다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내년 예산 법정 처리 시한은 반드시 지키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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