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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로제 ‘아파트’

좋아하는 노래를 물으면 십인십색(十人十色)의 답이 나온다. 영혼을 적시는 인생곡도 있고 분위기를 띄우는 애창곡도 있다. 노래방 조명까지 들썩이게 하는 댄스곡이 있는가 하면 부유(浮遊)하던 자아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명상곡도 있다.

기발한 설문지가 눈길을 끈다. ‘내 장례식에 이 노래를 틀어 줘’. 영안실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영정 앞에서 절을 하나 묵념만 하나, 조의금은 얼마를 내나, 장례식장에 몇 분 정도 머무는 게 적당한가. 이런 게 보통의 고민거리인데 영결식장에서 울려 퍼질 노래, 그것도 본인이 죽은 후 조문객들에게 들려줄 노래를 조사하다니 발상이 참신하지 않은가.

결과물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1위 ‘내 마음속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아이유 ‘밤편지’), 2위 ‘네가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고 믿어 오늘을 위해 그저 견뎌줘서 고마워’(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3위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전인권 ‘걱정 말아요 그대’), 그런데 목록 중 4위가 고정관념을 깬다. 블랙핑크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아파트’가 웬 말이냐.

발표한 지 40년도 넘은 윤수일의 ‘아파트’는 응원가로 유명하다. 그런데 다시 들으니 영결식에도 꽤 어울린다.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그러나 글로벌 신곡도 여러 번 들어보니 설문에 장난으로 답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떠난 사람 보내는 노래가 아니라 남은 사람 잘 살라는 곡(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으로 관점을 바꾸니 더욱 그렇다. ‘Sleep tomorrow but tonight go crazy(잠은 내일 자면 되니 오늘 밤은 미쳐보자) All you gotta do is just meet me at the(넌 그냥 거기서 날 만나면 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이 윤수일의 수줍은 아파트라면 춤추고 노래하며 오늘을 즐기는 클럽이라도 좋다는 게 로제의 개방형 아파트다. ‘It’s whatever you like Turn this 아파트 into a club(네가 좋다면 이 아파트를 클럽으로 바꿔 보자)’.

신기하게도 예전에 죽음을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MBC ‘명랑 히어로’)이 있었다. 그날 초대받은 인물은 수의를 입은 채 천국의 방으로 숨고 진행자들은 장례식장에서 유언장을 읽은 후 고인을 추모한다. 좋은 말만 하는 게 아니다. 이른바 ‘뒷담화’를 과감하게 펼친다. 당사자의 표정은 가감 없이 카메라에 잡힌다. 점입가경에 이를 때 천국의 방문이 열린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어?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니 어이가 없네. 시청자 반응도 갈렸다. 삶을 돌아보게 됐다는 호의에서부터 ‘죽음이 장난이냐’는 항의까지. 결국 ‘환생 프로젝트’는 단기 실험 예능으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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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은 온갖 문장부호의 집결지다. 고인에겐 쉼표와 말없음표, 조문객에겐 물음표와 느낌표. 가깝게 지냈던 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김수미 씨는 평생 일만 하다가 갔다. 하지만 보내고 나니 이분에겐 일터가 놀이터였고 배움터였고 싸움터였다. 좀 쉬라고 할 때마다 바쁜 게 좋다더니 이제 쉼터에서 환한 웃음(영정사진)으로 문상객을 맞는다. 본인 장례식에서 어떤 노래를 틀까 물었다면 뭐라고 답했을까. 과거 인터뷰에서 이 곡을 언급한 게 기억난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되짚어보니 김수미 씨야말로 방송계의 ‘명랑 히어로’였다. 울음보다 웃음을 더 많이 남겼으니 그 정도면 잘 산 인생 아닌가.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