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질주가 거침없다. 올 3분기에 시장 예상치를 훌쩍 웃도는 깜짝 실적을 기록했다. 반성문까지 발표해야 했던 삼성전자와는 대조적이다. TSMC 영업이익은 15조2730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8.2%, 매출액은 32조1580억 원으로 36.5% 각각 급증했다. 이에 따라 주가는 17일 뉴욕증시에서 10% 가까이 급등해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했다. 다우종합지수는 엔비디아 등 반도체 관련주의 동반 강세에 힘입어 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TSMC의 고공 행진은 AI 반도체 열풍을 반영한다. 이 회사는 AI 반도체 분야를 주도하는 엔비디아를 비롯해 글로벌 업체의 AI 모델 학습용 반도체의 위탁 생산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나노 단위의 첨단 공정을 토대로 가격 인상을 주도하며 탄탄한 실적을 쌓고 있다. 해외 공장과 설비 증설도 확장 일로다. 대만 본토를 넘어 미국·유럽·일본 등으로 생산 거점을 급속히 넓히며 시장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올 설비투자는 분기 매출액보다 많은 41조1000억 원을 넘을 전망이다. 범용 메모리 반도체가 스마트폰·PC 등의 수요 감소로 부진한 데 반해, AI 반도체의 질주는 계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한국 반도체는 AI 반도체의 핵심 중 하나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정도에서만 정상일 뿐, 전체적으로는 밀리는 실정이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동력으로 추진해왔던 파운드리 사업이 대표적이다. TSMC의 시장점유율이 2022년 53.4%에서 2024년 62.3%로 높아진 반면, 삼성전자는 16.5%에서 11.5%로 쪼그라들었다. 3분기 실적 부진으로 CEO가 반성문까지 썼다. 사업 구조조정에 착수한 만큼 경쟁력 회복에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SK도 녹록하지 않다. 하이닉스 정도만 이익을 낼 뿐, 다른 계열사는 부진해 그룹 차원에서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 앞길은 험난하다. AI 시대에 반도체는 핵심인데, 정상에 오르긴커녕 격차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닌가. 이런 추세가 굳어져 만년 2위로 주저앉진 않을지 걱정된다. 반도체 비중이 큰 국가 경제는 더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