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024년 8월 14일 오전 전기차 차량 화재가 발생했던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충전기가 녹아내려 흉물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화물 적재하면 이동 가능 거리 급감
재단 지원도 못 받아 복지 사각지대


“배터리가 빨리 소모될까 봐 여름에 에어컨도, 겨울에 히터도 켜지 못합니다.”

부산에서 전기 화물차로 개인 용달 사업을 하는 김경환(가명·43) 씨의 한숨이다. 김 씨가 운전하는 전기 화물차는 한 번 충전하면 이동 가능 거리가 최대 210km 안팎이지만, 화물을 가득 실으면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서울은커녕 인근 지역을 벗어나기 어렵다.

아직 충전시설이 미비한 탓에 장시간 운전 시 다시 충전하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려, 화주들도 일감을 잘 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 씨는 “생계가 곤란할 정도로 일이 줄어들었는데, 전기차는 장거리를 가지 못하니 그나마도 받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이런 고충은 김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들어 1t 경유 화물차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개인 용달 사업자의 대안은 LPG 차량과 전기차만 남았는데, 대당 400만 원에 달하던 LPG 차량 보조금마저 점점 줄어들다가 올해 완전히 끊겨 경제적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로 ‘자의 반 타의 반’ 몰리게 되는데 전기차는 장거리 운행이 어려운 데다 도심 외곽으로 나가면 충전시설도 찾기 어려워 이중고를 겪는다. 최근 전기차 화재가 빈발하면서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에 주차가 제한되는 것도 난관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개인 용달 사업자들은 생산이 중단된 경유 화물차를 중고로 구입하는 등, 오히려 환경오염을 부추기는 반작용까지 벌어지는 실정이다.

김 씨처럼 전기차를 운전하면 화물차 기사들을 위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은 또 다른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유가보조금을 재원으로 운영되는 화물복지재단은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법률구조 지원, 교통사고 생계 지원, 4대 중증질환 치료비 지원 등을 제공한다. 개인사업자인 용달차 운전자들에게 사실상 유일한 복지 혜택이지만, 전기로 충전하는 전기차는 유류와 관련이 없다 보니 지원 대상이 아니다.

부산개인용달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관계자는 “환경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국가에서 유도하는 전기차로 가는 것이 맞지만, 정책이 너무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여러 부작용이 수반되고 있다”며 “용달차 운전자들이 전기차로 교체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될 때까지는 보조금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당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부산 남구)은 “아직 화물 배송용 전기차가 성능과 효율면에서 실용화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는데 성급히 LPG차량의 보조금을 없앤 것은 세심하지 못한 정책적 판단”이라며 “녹색성장으로 가는 과정에서 약자들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관련 세제 개선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조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