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권대영 ‘칠봉서원’, 45×53㎝, 종이에 펜, 2024.

과거 우리나라가 ‘근역(槿域)’ 혹은 ‘근화향(槿花鄕)’으로 불리기도 했다. ‘무궁화가 피어 있는 땅’을 의미한다. 무궁화만 많이 피어 있다기보다는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라는 의미일 것이다. 불모는 아니지만 비옥하지도 않고, 값진 광물자원도 없고, 그저 산만 많은 땅. 그래도 이 땅은 기적이 일어나는 땅이다.

산천경개를 좇아 주유하다 원주에서 권대영 화백과 조우했다. 그림 같은 칠봉을 마주한 언덕에 칠봉서원이 복원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조선 현종 임금에게서 ‘칠봉’이라 사액(賜額)을 받았음에도, 대원군 섭정 시절 훼철의 불운을 맞은 서원이다. 어떤 폐단들이 있었는지는 역사에 평가를 맡기고 싶다.

우리 유적에 서린 얼과 뜻을 화폭에 담아온 작가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고독한 창작의 격투장 같은 작업실에서 잠시 벗어난 홀가분함일까.

펜의 움직임이 물 만난 고기의 유영처럼 생기 있고 유려하다. 감각적인 선들의 집적에 겸재의 진경(眞景) 정신도 엿보인다.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까지 가물가물 들린다.

이재언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