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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삼겹살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자료가 일제강점기의 것이라는 내용을 봤다. 그런데 그때는 ‘삼’겹살이 아니라 ‘세’겹살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바뀌었다고 한다. 귀에 쏙 들어왔다. 언젠가부터 음식에서도 다는 아니겠지만, 우리말이 한자의 소리로 변해가는 현상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김정호가 1840년대에 제작한 서울 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는 보면 볼수록 명품이다. 목판에 새겨 인쇄했음에도 도봉산, 북한산, 백악산 그리고 좌우로 겹겹이 뻗어내려 서울을 감싸는 산줄기의 흐름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굳이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살짝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이는 김정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김정호는 지도를 만든 후 판매해 먹고살고자 했던 사람이고, 잘 팔려면 소비자의 기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남북 1m 정도 크기의 수선전도는 서울의 지리정보를 찾아보기 위한 용도가 분명히 있었지만, 그건 가끔이다. 일상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필자가 어렸을 때 큰댁의 안방과 국민학교 교장실의 벽면에서 봤던 우리나라 전도처럼 벽에 걸어놓는 장식품의 용도가 더 컸다. 그러니 아름답게 만들어야 잘 팔릴 수 있는 것이고, 김정호는 이런 소비자의 기호를 잘 파악해 누가 봐도 아름다운 서울 지도인 수선전도를 세상에 선보여 히트 상품으로 성공시켰다.

수선전도에는 서울 도성 안 북쪽의 매봉(鷹峯)에서 흘러내린 두 개의 하천이 동쪽의 흥인지문과 서쪽의 돈의문을 연결하는 동서대로와 만난다. 그곳에는 두 개의 다리가 놓였는데, 흥인지문부터 初橋(초교)와 二橋(이교)의 한자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런데 조선 시대 사람들은 그것의 한자 소리인 초교와 이교로 부르지 않았다. 흥인지문에서 첫 번째 다리라는 의미의 ‘첫다리’, 두 번째 다리라는 뜻의 ‘두다리’로 불렀다. 요즘의 삼거리와 사거리도 세거리와 네거리였다. 세월이 무심하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