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로고. 과기한림원 홈페이지 캡처

총괄부원장의 상식 이하 행동에 직원 2명은 공황장애로 ‘병가’
논란의 부원장 "피해 준 일 있다면 사과하고 싶다" 해명


정부 예산 지원을 받는 과학기술계 대표 학술단체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총괄부원장이 성희롱과 갑질로 오랜 기간 직원들을 괴롭혀 왔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부원장의 오랜 괴롭힘에 직원 2명이 병가를 냈으며, 이와 관련해 직원들이 지난달 고용노동부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과기한림원에서 제출받은 자료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창희 과기한림원 총괄부원장은 재임 기간인 2022년 3월부터 최근까지 직원들에게 성희롱·사적 심부름·강요 등을 일삼은 것으로 밝혀졌다.

진정서에 따르면, 이 총괄부원장은 지난 4월 한림원 회관 복도에서 남직원 A 씨의 주요 부위에 자신의 손을 가까이 대고 쥐는 모양을 취하며 "(저쪽에서)XX을 자꾸 이렇게 움직여. 내가 자꾸 이러면 기분 나쁘지. 걔들한테 절대로 따라가지 마"라며 성희롱했다. 그는 한림원에서 진행 중인 사업과 관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휘둘리지 말라며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괄부원장은 지난해 5월 신규 직원 채용 당시 인사업무와 무관한 여직원 B 씨에 남성을 뽑으라는 의미의 "고추 뽑아. 고추"라는 발언을 공개장소에서 수차례 하기도 했다.

채용 결과 남성이 입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 부원장은 여러 직원과 점심식사 중 불만을 제기하며 "남자(요리사)만 일하고 여자(계산원)는 일 안 하잖아. 힘든 일은 남자들이 다 해"라고 성 차별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부원장은 A 씨에게는 업무시간 중 개인 병원 진료를 위한 이동과 자택 귀가 등을 관용차로 해 달라고 했고, 개인 자가용 수리, 내비게이션 업데이트 등도 지시하는 등 개인 업무도 시켰다. C 씨에게는 부당한 업무를 강요하고 폭언 등을 일삼았으며, 이견을 냈다는 이유로 강등 조치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일들이 이어지면서 결국 A 씨는 지난 4월 공황발작 증세가 발생해 병원 진료를 받았고, 1개월 동안 병가 휴직했다. C 씨도 공황장애로 병원에서 휴직을 권유해 지난달 병가를 신청했다.

이 부원장은 이 과정에서 C 씨에게 ‘업무도 없는데 무슨 스트레스냐’고 발언했으며, 유욱준 과기한림원장도 ‘(내년 2월까지인)임기가 다 됐으니 그냥 견뎌라’ ‘엉터리 병원에서는 누구나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며 승인을 거부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C 씨는 이 의원실에서 관련 자료를 한림원에 요청한 직후인 지난 2일 병가가 승인됐다.

자신에 대한 여러 비판에 대해 이 부원장은 "평소 직원들과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소 직원들에게 듣기 불편한 언행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언행으로 직원들에게 피해를 준 일이 있다면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해민 의원은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투명한 관리가 필수인 과기한림원이 과기정통부 국장 1인을 제외한 이사·감사 모두를 내부 회원으로만 구성하고, 실질적인 감사가 없는 등 정상적인 관리 감독이 전혀 없다"며 "기관 예산 절반 이상이 정부 지원 예산임에도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 않고 있고, 원장이 임기 후 이사장이 되는 관행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기한림원이 제대로 된 석학기구로서 역할을 하려면 최소한의 관리 감독이 가능하도록 임원 구성 등 거버넌스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과기한림원은 연간 예산 86억 원 중 정부로부터 약 69억 원을 지원받고 있다. 최근 원장과 총괄부원장 등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회의와 출장을 부풀려 골프와 관광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과기정통부가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노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