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함준 前 외교안보연구원장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임시정부 수립 때 건국한 나라인가, 아니면 1945년 8월 일본으로부터 독립해 1948년 8월 건국한 나라인가? 정치권에서 건국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법상 어느 국가가 타국에 강제 합병돼 일정 기간 국가로서 소멸했다가 주권을 회복해 ‘부활한 국가(resurrected state)’인 경우, 소멸 전 국가와 동일한 국가인지 여부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관한 국제법과 국제 관행은, 일관되게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을 동일 국가로 간주해 왔으며 대한제국의 모든 행위가 대한민국에 승계됨을 인정해 왔다.

첫째, 대한제국과 수교한 미국과 영국 등 모든 서방 국가는 당시의 수교를 기념해 한미수교 120주년, 한영수교 120주년 등으로 대한민국과 함께 수교 기념행사를 한다.

둘째, 1948년 12월 12일 자 유엔총회 결의 제195(Ⅲ)호에 의해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된 것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했다’(A State of Korea existed)는 사실을 유엔이 집단적으로 결정한 사례다.

셋째, 국제사회는 대한제국이 1910년 이전에 체결한 6개의 다자조약과 관련해 이 조약들이 대한민국에 계속 적용된다고 간주해 왔다. 이는 대한민국이 대한제국과 동일한 국가라고 인정한 것이다. 또, 북한은 대한민국에서 분리된 국가라고 보아 이 조약에 새로 가입해야 했다.

넷째, 1940년 소련에 강제 점령됐다가 1991년 독립을 선언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도 모든 서방국이 이들의 독립 회복을 선언하고 외교관계를 ‘재개(renew)’했다. 그러나 혁명이나 패전 등으로 생겨난 국가가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 불이행을 위해 새로운 국가라고 주장해도 국제법상 국가의 동일성(Identity)이나 계속성(Continuity)이 확인되면 용인하지 않았다. 소련이 러시아혁명 후에 러시아와 다른 국가라고 주장했을 때, 오스트리아가 1차 대전 패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다른 국가라고 주장했을 때가 이에 해당한다.

다섯째,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명시한 바, 이는 대한민국이 일제강점기 아래서도 대한제국의 동일성과 계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임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법적 논리로 1986년에 대한제국이 1910년 이전에 체결한 6개의 다자조약 가운데서 당시까지 유효한 3개의 조약이 대한민국에 계속 효력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관보(官報) 및 조약 목록에 게재하는 한편, 이 사실을 3개 조약의 수탁국인 네덜란드와 국제사회에 (네덜란드를 통해) 공식 통보했다.

이와 같이 대한제국은 국가로서 소멸된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계속 존속해 왔다. 다만, 그 행위능력이 제한되고 영토와 국민에 대한 실질적인 통치권이 일본에 의해 불법적으로 대리 행사돼 왔을 뿐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1945년 일본으로부터 분리·독립한 신생 독립국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제한됐던 주권을 회복한 것이다. 즉, 대한제국과 동일한 국가 내에서 국체와 정체 및 국호가 변경된 것이다.

이제 국제법과 국제 관행, 그리고 우리 정부가 이미 대외적으로 천명한 방침에 따라 소모적인 건국절 논란은 접어야 한다. 지난 영욕의 역사를 잊지 말되 과거에만 얽매이지 말고, 미래 지향적인 글로벌 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통합의 정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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