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공로명 전 외무장관과 조태열(오른쪽) 외교부 장관, 박철희(왼쪽) 국립외교원장.

국립외교원서 명명식 개최
한·소 수교 등 업적 기려

글·사진=이미숙 전임기자·논설위원 musel@munhwa.com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외교부 일각에 제 이름을 남기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한국 외교의 산증인인 공로명(92) 전 외무장관은 3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의 ‘공로명 세미나실’ 개관식에서 1996년 퇴임 후 28년 만에 미래 외교관의 산실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세미나실이 마련된 것에 대해 감개무량한 듯 이렇게 운을 뗐다. 이승만 정부 때인 1958년 외교관이 된 뒤 그는 38년간 늘 한국 외교의 최전선에 있었다. 한·일회담과 남북 핵협상, 한·중 수교, 한·소 수교 등 어려운 협상을 도맡아 했던 최고의 외교전사였다. 공 전 장관은 외교관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성실을 꼽으면서 “협상이 성공하기 위해선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신뢰를 주기 위해선 성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실을 인생 지침으로 삼아온 원로답게 그는 후배들에게 “영웅호걸이 못 될지언정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仰天不愧) 성실한 삶을 살 것”을 재차 당부했다.

공 전 장관은 특히 “요즘 모두가 강력한 한·미 동맹을 얘기하지만, 미국이 우리를 떠나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면서 “중국을 지척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를 받쳐줄 나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력이 떨어진 탓에 의사소통에 불편을 겪는 그의 모습에선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지만,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선 원칙을 지키며 살아온 외교관의 기개가 느껴졌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축사에서 “공 전 장관은 역사적인 외교 현장의 중심에 서 계셨던 우리 외교의 거목”이라면서 “국립외교원에 공로명 세미나실이 조성된 것은 앞으로 우리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은 공로명 세미나실을 마련한 이유에 대해 “공 전 장관은 외교관을 넘어 이 시대의 참된 지식인이기 때문”이라며 공 전 장관이 한일포럼 한국 측 회장을 비롯해 동국대 일본연구소장, 세종재단·동아시아재단 이사장으로 일하며 활동 영역을 학계 및 싱크탱크 등으로까지 확장한 점을 높이 꼽았다. 이날 행사엔 유명환·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 심윤조 전 외교부 차관보, 김건 국민의힘 의원 등 30여 명의 전·현직 외교관들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