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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소수가 다수 지배하는 韓정치… ‘민주주의 붕괴’의 뉴노멀

  • 입력 2024-05-28 10:28
  • 수정 2024-05-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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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민의 Deep Read - 21대 국회를 마감하며

21대 마지막 본회의장서 확인된 의회정치 붕괴… 대통령 ‘거부권’과 野 ‘강행처리’ 정면충돌
‘다수의 독재’ 넘어 극단적 ‘소수의 전횡’ 시대… 법을 정치 무기화해 민주주의 허무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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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사상가 기 소르망은 자신의 책 ‘Made in USA’에서 좋든 싫든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은 ‘미국산’이라고 말했다. 알렉시 토크빌이 ‘미국 예외주의’라고 부른 ‘미국의 민주주의’와 ‘대통령제’도 새로운 ‘미국산 문명’이다.

그 미국산 대통령제와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21대 국회가 종료된 28일 한국의 정치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극단적 생각을 가진 소수가 상식적 다수를 지배하게 되는 달갑지 않은 뉴노멀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흔들리는 민주주의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왝더독’ 현상은 21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28일에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소수 강성 당원의 목소리가 당을 지배하는 제1 야당이자 원내 1당 더불어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안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압도적인 거부권 행사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대책 없이 헌법상의 권한을 남발했고, 이에 범야권은 탄핵을 공공연하게 입에 올리고 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연작을 통해 민주주의의 약점을 날카롭게 통찰한 형국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그들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불문율을 파괴한 대통령은 지금껏 없었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민주주의 파괴를 고발했다.

과거 미국의 정당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할 가능성이 큰 대중 선동가와 극단주의자를 철저히 가려냈지만, 1970년대 이후 각 정당은 더 민주적인 방식을 채택한다는 명목으로 프라이머리를 확대해 일반 시민들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게 함으로써 후보를 검증하는 기능은 크게 약해졌다. 우리도 2000년대 이후 경쟁적으로 들여온 ‘국민 참여 확대’와 ‘당원 권리 강화’ 이후 민주주의가 더 강해졌는지 아니면 더 약해졌는지 검증할 때가 됐다.

두 저자는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등을 민주주의 붕괴 조짐으로 봤다. 이 점에서는 미국과 한국 모두 위험하다. 신작에서는 민주주의의 근원적 약점을 파고들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다인종 민주주의로 ‘백인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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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민주주의자

레비츠키 등은 이렇게 썼다. “2021년 1월 6일, 미국인들은 상상조차 힘든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부추긴 폭동이었다. 이로써 4년에 걸친 민주주의 퇴보가 쿠데타 미수로 정점을 찍었다. 그 광경을 지켜봤던 많은 미국인은 다른 나라 국민이 그들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 느꼈던 공포와 혼란, 분노의 감정을 똑같이 느꼈다.”

이들 저자에 따르면 18세기와 19세기의 걸출한 사상가들은 민주주의가 ‘다수의 독재’로 변질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지만, 오늘날 미국 사회가 직면한 절박한 위협은 오히려 소수의 지배라고 한다. 저자들은 ‘다수의 독재’를 막기 위한 ‘반 다수결주의’를 추진한 탓에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게 된 역설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더더욱 큰 문제를 노정시키는 중이다. 레비츠키 등의 규정에 따르면 ‘충직한 민주주의자(loyal democrat)’와 ‘충직한 척하는 민주주의자(semi-loyal democrat)’의 근본적인 차이는 극단주의 세력과 관계를 단호히 끊느냐 아니냐 하는 점이다. 넥타이 차림의 충직한 척하는 민주주의자는 주류 정치인 듯하지만 실은 민주주의 붕괴의 씨앗을 품고 있다.

다수의 권리를 위한 것인가 혹은 당파적 이익을 위한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면 가짜 민주주의자의 본 모습이 확인된다. 극단주의 세력과의 위험한 동맹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다양성의 존중과 공존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도 일찍이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는 책에서 미국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분석하며 정치 갈등의 본질을 통찰했다. 진정한 정치 발전을 막는 소모적 정쟁과 갈등, 그리고 극단적 생각을 가진 소수가 상식적 다수를 지배하게 되는 뉴노멀은 한국이 미국보다 더 확고하게 자리 잡은 형국이다.

◇극단주의 세력과의 동맹

필자는 2018년 1월 2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건국 이후든, 해방 이후든 주류 교체는 혁명적 사건이다. ‘이 나라는 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한 보수로서는 상상할 수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영원한 제국 같았던 보수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역사를 보면 빈틈없이 강고해 보였던 지배권력은 대개 그런 식으로 한순간에 와해적 최후를 맞았다. 히말라야가 무너지면 에베레스트 아우라도 사라진다. 보수의 페르소나 박근혜가 몰락하자 보수의 아우라도 사라졌다.”

미국이 더 이상 백인의 나라가 아니듯 한국도 더 이상 보수의 나라가 아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쓴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의 원제가 ‘Identity’인 데서 보듯 한국은 주류 전쟁, 정체성 전쟁 중이다. 그 결과 한국은 본격적으로 민주주의 위기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에 따르면 민주주의자들이 가져야 할 세 가지의 원칙이 있다. ①선거 결과에 승복할 것 ②권력 쟁취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 ③극단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지 말 것. 한국에서 ②는 사라졌지만 ①은 여전히 꿈틀거리고 ③은 그 악마성을 과시하고 있다.

민주당 내 열성 당원들이 자기 당 소속이었던 김진표 국회의장이 ‘중립적’이란 이유로 수박으로 몰아세우며 거칠게 공격하는 게 뚜렷한 징후다. 극단적 소수는 확실한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보는 부류다. 또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빠져 있다. ‘아고라’는 사라지고 칼 들고 죽이는 ‘콜로세움’의 검투사 같은 정치인만 득시글하다.

◇법을 무기화하는 정치

대통령이 헌법상 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행위, 의회가 탄핵소추 권한을 남용하는 행위 모두 극단적 소수가 법을 정치적으로 무기화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행태다. 이는 21대 국회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과 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 및 탄핵론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한국 정치에 울리는 경종이기도 하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용어 설명

‘레비츠키’‘지블랫’은 미 하버드대 교수이자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들. 스테디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후속작으로 최근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내놓음.

‘다수의 독재’는 다수당이 힘의 논리로 소수당을 억압하는 것. 1835년 알렉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섹션 타이틀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짐. ‘다수의 폭정’ ‘다수의 전제’로도 쓰여.

■ 세줄 요약

흔들리는 민주주의 : 21대 마지막 본회의는 흔들리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 소수 강성 당원에 지배받는 야당은 법안을 단독 강행 처리하고 탄핵소추를 입에 올리며,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상 거부권을 남용.

가짜 민주주의자 : 레비츠키와 지블랫의 신작에 따르면 과거엔 ‘다수의 독재’를 우려했지만, 오늘날 위협은 오히려 극단적 소수의 지배임. 극단적 소수가 상식적 다수를 지배하는 달갑지 않은 뉴노멀이 만들어지는 것.

법을 무기화하는 정치 : 민주주의자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치가 극단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지 말아야 한다는 것. 거부권 남용과 탄핵소추 남발은 소수가 법을 정치적으로 무기화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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