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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팬텀 고별 비행 동승기…“공군의 과거·현재·미래 함께 국토순례”

정충신 선임 기자
정충신 선임 기자
  • 입력 2024-05-12 12:52
  • 수정 2024-05-1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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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내달 7일 퇴역식을 앞둔 F-4E 팬텀 4대 필승편대가 지난 9일 49년 만의 국토순례 고별비행을 하고 있다. 맨 앞 패텀 4번기는 49년 전 방위성금헌납기 모습을 재연해 정글무늬 도장을 새로 했다. 나머지 3기는 회색 바탕에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라는 기념 문구가 새겨졌다. 문구 양 옆에는 팬텀의 고유 캐릭터인 ‘스푸크(spook·도깨비)’ 문양, 왼쪽엔 빨간마후라와 태극무늬를 더한 스푸크, 오른쪽에는 조선시대 무관의 두정갑을 입은 스푸크가 자리잡았다. 공군 제공



9일 과거(F-4E 팬텀), 현재(F-15K), 미래(KF-21) 전투기 첫 편대 비행
국민성금 도입 박정희 대통령 ‘필승편대’ 49년 만에 국토순례 비행 재현


대한민국 영공=국방부공동취재단, 정충신 선임기자

대한민국 공군의 과거(F-4E 팬텀), 현재(F-15K), 미래(KF-21)를 상징하는 전투기들이 최초로 편대비행을 하며 하늘을 날았다. 49년 만에 재현된 F-4 팬텀 고별 국토순례비행에서 국방부 기자들을 동승한 상태였다.

“오늘 하늘은 팬텀이 고별 순례를 하기에 딱 좋은 날씨죠.”

지난 9일 경기 수원시 제10전투비행단에서 바라본 상공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이날 대한민국 영공을 55년간 지켜온 팬텀은 다음 달 7일 퇴역식을 한 달 앞두고 49년 만의 고별 국토순례비행에 나섰다.

제153전투비행대대 소속의 마지막 남은 F-4E 4기 편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 방위성금으로 1975년 구매한 F-4D 5대에 붙여준 ‘필승편대’란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의 중국 방문, 베트남 공산화 등 안보 위기가 현실화하자 우리 국민은 부족한 국방 예산을 대신해 십시일반 방위성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인 163억 원 중 71억 원으로 당시 세계 최강, 최신 전투기 F-4D 5대를 구입했다. 이들은 서울 등 12개 주요도시 상공을 순례비행하며 국민에게 ‘필승편대’ 신고식을 가졌다. 현재 공군은 F-4D 성능 개량형이자 마지막 팬텀인 F-4E 10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그 중 6대가 수원 기지에 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F-4E 팬텀 필승편대 4대와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시제기 2대가 남해안에서 편대 비행을 실시하고 있다. 공군 제공

탑승 기자들은 팬텀의 마지막 특급 임무에 동행하기 위해 사전 교육과 메디컬 체크를 받았다.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도 둘렀다. 이후 중력가속도에 의한 의식상실(G-LOC)을 막기 위한 G-슈트, 구명정이 달린 하네스, 산소공급과 통신장비 연결을 위한 헬멧 등 장구를 꼼꼼히 챙겼다. 장구류 무게만 약 15kg. 막중한 임무만큼이나 어깨가 무거웠다.

편대를 이끄는 1번기만 전ㆍ후방 조종사 모두 베테랑으로 편성됐고, 2~4번기 후방석에는 기자들이 탑승했다. 전천후 전폭기인 팬텀은 F-15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보기 드문 2인승 전투기였다. 당시 게임체인저로 불렸던 레이더 미사일을 운용하기 위해, 무기통제사로 불리는 후방석 조종사는 △레이더 운용 △좌표 입력 △공대지 레이저 유도 폭탄(LGB) 타켓팅 등 무장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팬텀 후방석 조종사로 830시간을 비행한 이성진(대령) 대구 제11전투비행단 부단장은 “뽀빠이란 애칭의 공대지 미사일 팝아이(Popeye) 미사일을 비롯해 최대 8480kg이라는 어머어마한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팬텀이 떴다 하면 북한이 ‘하늘의 도깨비’ 위용에 짓눌려 아예 비행기 자체를 띄우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이 부단장은 “후방석은 좁은 조종석(Cockpitㆍ콕핏), 제한된 시야, 비행 중 지속적으로 레이더 및 계기판 관측 등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멀미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팬텀은 그만큼 비행 중 진동이 심해 탑승자에겐 만만찮은 도전이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9일 팬텀 필승편대가 국토순례 비행을 하며 포항제철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드디어 팬텀에 탑승했다. 마치 영화 ‘탑건’의 한 장면처럼 8명의 조종사와 기자들이 일오횡대로 격납고를 향했다. 지상 발전기를 통해 예열하며 굉음을 내고 있는 4기의 팬텀이 우리를 맞이했다. 4번기는 49년 전 방위성금헌납기 모습을 재연해 정글무늬 도장을 새로 했다. 나머지 3기는 회색 바탕에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라는 기념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문구 양 옆에는 팬텀의 고유 캐릭터인 ‘스푸크(spook·도깨비)’ 문양이 새겨졌는데 왼쪽엔 빨간마후라와 태극무늬를 더한 스푸크가, 오른쪽에는 조선시대 무관의 두정갑을 입은 스푸크가 자리잡았다.

‘스푸크’는 팬텀 최초 개발 당시, 기술도면 제작자가 항공기의 후방 모습을 보고 착안해 그린 캐릭터로, 팬텀을 운용한 여러 나라에서 ‘팬텀 마스코트’로 사랑받았다. 팬텀을 후방에서 바라봤을 때 마치 서양의 전통적인 유령(Phantom)과 흡사해 보여 생겨난 캐릭터다. 그러고 보니 밑으로 처진 수평꼬리날개는 유령이 눌러쓴 모자로, 두 개의 엔진 배기구는 유령의 두 눈을 빼닮았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9일 수행비행장에서 F-4 팬텀 필승편대 고별 국토순례비행을 위해 조종사와 기자단이 팬텀 격납고로 이동하고 있다. 공군 제공



“탑승이 제일 걱정된다.”

김태형(중령) 153대대장이 걱정했던 대로 조종석에 오르는 것부터가 정말 만만찮았다. 왼발부터 7계단의 사다리를 오른 뒤 전방 조종석 옆 좁은 공간을 살금살금 옆걸음으로 이동, 조종석에 앉았다. 각종 결속 장비들로 기체와 신체를 하나로 묶었다. 옴짝달싹하기 힘든 상황. 헬멧 크기 때문에 머리 움직임도 제한됐다. 전방석 조종사의 지시에 따라 레이더 스위치를 ‘스탠바이’로 옮겼다.

활주로를 마주한 팬텀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헬멧과 귀마개를 뚫고 거친 엔진음이 파고들었다. 기체가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단 8초. 10시 정각, ‘필승 편대’ 고별 국토순례비행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항로에 들어서기 위해 급선회 기동을 하자 원심력에 의해 중력가속도(G)가 발생했다. 약 3G(중력의 3배) 가량 압력이 몸을 짓눌렀다. 그러자 G슈트에 공기가 자동으로 주입됐다. 공기압을 이용해 하체에 혈액이 쏠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캐노피(조종석 덮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수원 시내가 정면으로 보였다. 기체가 거의 70도 가량 왼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선회 기동 이후엔 지면과 평행하게 비행했지만, 기류의 영향으로 기체가 꾸준히 상하로 꿀렁거렸다. 레이더와 계기판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배멀미와 같은 이유로 속이 매스꺼워지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탓에 태양열은 조종석을 뜨겁게 달궜다. 4번기 전방석 조종사 박종헌 소령은 “여름에 비행하다 보면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을만큼 뜨겁다”고 했다.

이륙 후 편대는 핑거팁(Fingertip) 대형(손가락을 붙였을 때 검지부터 소지까지의 삼각형 모양)을 유지하면서 4번기만 좌우 기동하며 상황에 따라 레프트 핑거팁, 라이트 핑거팁 대형을 만들었다. 기체간 간격을 불과 2∼3m. 옆 기체 조종사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비행 첫 20분까지는 놀이기구 타는 듯, 바이킹을 탈 때 느끼는 가슴 철렁거림이 미세하게 반복됐다. 선회 기동을 할 땐 마치 레일 아래에 매달려 움직이는 놀이기구 열차를 타는 듯했다. 즐기는 시간은 딱 여기까지였다. 서해대교와 평택 삼성공장을 지나 옛 성환 비상활주로 자리에 다다르자 구토감이 몰려왔다. 산소공급 스위치를 100%로 올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1972년 5월2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 주관으로 팬텀이 비상활주로 이착륙 시범 행사를 가졌던 곳에서, 기자에겐 또다른 의미의 비상이 걸렸다.

답답함을 덜기 위해 안면을 압박하는 마스크를 벗은 채 기신기신 버티던 기자에게,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과의 만남은 달갑지 않았다. 10시 40분 경 캐노피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신록의 태백산맥은 장관이었지만, 산맥의 영향으로 발생한 난기류는 지금껏 참아왔던 멀미 구토의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구토용 비닐봉지는 꺼내기 쉬운 곳에 두라”는 김 대대장의 조언에 따라 왼쪽 팔뚝 주머니에 넣어뒀던 검정색 비닐봉지를 귀에 걸었다.

팬텀이 가장 활약했던 지역인 동해안에 다다르자 편대는 핑거팁 대형을 느슨하게 풀었다. 매스꺼움은 진정됐지만 멀미로 인한 졸음이 몰려왔다. 팬텀은 냉전시대에 동해안에서 구소련 전력과 북한의 미그기 전력을 차단, 동북아를 주름잡으며 활약했다. TU-16(1983), TU-95(1984) 폭격기와 핵잠수함(1984)을 상공에서 식별해 차단했다. 1998년 2월에는 러시아 IL-20 정찰기에 대한 전술조치를 펼치기도 했다.

포항ㆍ울산ㆍ부산ㆍ거제 등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전초기지였던 한반도 남동부 주요 도시들을 거친 필승편대는 대구로 기수를 돌리기 위해 남에서 북으로 급선회했다. 2차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이 정도만 해도 못 버틸 지경인데, 폭탄 투하를 위해 급강하와 급상승 기동을 반복하는 실제 폭격 훈련에서 조종사들이 극복했을 역경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수원 기지 이륙 후 1시간 46분이 지나서야 대구 제11전투비행단에 착륙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말 그대로 녹초 상태가 됐다. 총 비행시간이 1300시간에 이르는 4번기 전방석 조종사 박 소령 역시 “평소 임무 비행 시간은 1시간 남짓”이라며 “고별 비행인 만큼 무척 힘든 임무”라고 혀를 내둘렀다.

전투기에 기름을 채우고, 조종사들의 배를 채운 후 필승편대는 ‘팬텀의 고향’ 공군 대구기지에서 오후 3시10분에 다시 날아올랐다. 대구기지는 1969년 팬텀(F-4D)이 미국·영국·이란에 이어 네 번째로 도입됐을 당시 최초의 팬텀 비행대대가 창설된 곳이다. 2005년 F-15K가 도입돼 팬텀의 공대지 타격 역할을 물려받기 전까지 팬텀의 주 기지 역할을 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F-4E 필승편대가 지난 9일 한반도 상공 고별 국토순례 비행 중 선회기동을 실시하고 있다. 공군 제공

이제는 F-15K가 굉음을 내며 한두시간 간격으로 뜨고 내리는 대구기지에서 팬텀은 마지막 국토순례 비행을 떠났다.

대구기지를 떠나고 10분 가량 흐르자 사천비행장 인근에서 우리 공군의 막내이자 기대주인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시제기 2대가 합류했다. 수신기 너머로 KF-21을 뜻하는 ‘보라매’라는 콜 사인이 들려왔다. 팬텀과 KF-21은 델타(Δ) 대형을 이뤘다. 팬텀 편대장 ‘파파1’이 선두에, KF-21이 좌우 꼭짓점에 섰다. 가운데에서는 방위성금헌납기 도색을 한 팬텀4호기가 비행했다. 국토순례비행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F-15K 2기는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이 순간을 촬영했다. 공군의 과거(팬텀), 현재(F-15K), 미래(KF-21)가 한 자리에 모인 역사적 장면이었다.

1969년 도입 당시의 팬텀기는 지금의 세계 최강 5세대 스텔스전투기 F-35와 비견될만한 미국 첨단 항공 기술의 집약체였다. 2005년 도입된 F-15K는 비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이 전력화한 ‘타우러스(TAURUS)’ 장거리공대지미사일로 대전에서 평양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킬체인(Kill Chain)’의 핵심 전투기다. KF-21은 우리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로, 내년 양산 후 팬텀의 빈 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 기종이 경남 합천에서 사천을 거쳐 전남 고흥까지 약 20분을 함께 날았다. 눈 아래로는 삼천포대교, 여수 충무대교, 한려수도가 펼쳐졌다. 고흥 상공에서 KF-21은 우측으로 급선회하며 이탈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심히 복귀하십시오.” 역전의 노장 대선배 팬텀 편대에 막내가 보내는 헌사로 들렸다. F-4E는 축포를 쏘듯 플레어를 발사했다.

팬텀 편대는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소흑산도)를 향했다. 팬텀은 1971년 소흑산도에 출현한 간첩선을 격침하는 작전에서 활약했다. 가거도에서 서해를 따라 북상한 팬텀 편대는 이날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군산앞바다에서 수원기지를 향해 동쪽으로 마지막 급선회에 나섰다. 팬텀 편대는 급선회와 함께 축포처럼 플레어를 터뜨렸다. 수평계는 ‘수평’이라 알렸지만 급선회를 시작하자 급상승기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기자의 목이 앞으로 꺾였다. 중력의 2~3배 정도 되는 힘이 가해졌다.

대구기지에서 이륙한지 약 1시간30분만에 공군 수원기지에 착륙했다. 감속을 위해 후방에 전개된 드래그슈트가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민항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충격은 크지 않았다.

아파트 숲을 뚫고 이륙해 아파트 숲속으로 내렸다. 공군 관계자는 “도시가 확장하며 대구기지·수원기지 인근까지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했다. 팬텀 도입 이후 우리나라가 이뤄낸 번영을 방증하듯, 공군기지 인근에는 아파트가 무수히 들어섰다. 착륙하고 나서야 팬텀에 내려앉은 시간의 더께가 느껴졌다. 계기판, 백미러, 각종 결속 도구는 때가 타고 도색이 벗겨져 있었다. 반세기 동안 영공을 지켰던 역전 노병은 정정했지만 희끗해진 머리는 숨길 수 없어 보였다.

F-4D 도입으로부터 55년, 현재까지 쓰이는 F-4E 도입부터 치면 49년 만이다. 공군 관계자는 “다음달 퇴역식에 해외 취재진 100여 명이 취재 신청을 했다. 외국 언론도 팬텀 퇴역식에 관심이 크다”고 했다. 퇴역한 팬텀은 전국 곳곳에서 전시되거나 적 세력의 유도탄이나 각종 탐지장비들을 혼란시키고 교란하기 위한 디코이로 활주로 등에 배치될 것이라고 공군이 전했다.

이날 방위성금헌납기 당시 모습으로 도색한 팬텀을 몰았던 박종헌 소령은 “1975년 국민들의 성금으로 날아오른 ‘필승편대’의 조국수호 의지는 불멸의 도깨비 팬텀이 퇴역한 후에도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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