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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욕망만큼 저마다 다르고 또 복잡한 게 또 있을까요. 여행 크리에이터 3명이 각자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나라로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TV 예능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이 TV 프로그램에서 여행은 거의 ‘벌칙’에 가깝더군요. 출연자들은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긴장했고, 저개발국가를 뽑은 출연자는 낭패를 당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궁금했던 건 벌칙에 가까운 출연자들의 고생스러운 여행담을, 시청자들이 흥미롭게 지켜보는 이유였습니다.

이 프로의 인기 비결은, 낯설고 불편하고 때론 위험한 나라의 여행을 대리 체험해 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유튜브에 점점 더 위태롭고 자극적인 여행 콘텐츠가 나오는 이유도 비슷할 겁니다. 순전히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전쟁 중인 위험천만한 나라에 들어가고,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도시 뒷골목을 배회하고, 반한 감정을 일부러 건드려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까지 몰고 가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이런 TV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는 것과 ‘이런 여행을 좋아한다’는 건 서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듯합니다. 어쩌면 시청자들은 모험적 여행을 해보지 않았거나, 혹은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대리만족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한말 테니스 치는 서양인 외교관을 보곤 한 양반이 “그처럼 힘든 일을 왜 하인에게 시키지 않는가”라고 물었다는데, 그런 식의 질문은 여행에서도 가능합니다. “TV로 볼 것이지, 왜 직접 여행하는가.”

여행이 만들어주는 게 휴식과 이완일 때가 많습니다만, 때로 여행은 낯선 것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이웃에 대한 이해를 경험하게 합니다. 여행지의 특급호텔 고급레스토랑에서 와인과 곁들인 식사를 우아하게 즐기는 과시적 소비도 여행이지만, 삶의 해답을 찾아 홀연히 길 위에 서는 것도 여행입니다. 요즘 특급호텔은 비싼 방부터 팔리고,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예약이 밀려든다는군요. 여행지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걸 찾아서 과시하듯 소비하는 게 ‘요즘 여행’의 트렌드인 듯합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어려운 여행지는 이제 아무도 가지 않는 듯합니다. 당의정의 단맛만 빨듯 이렇게 편하고 안락한 여행만 계속해도 되는 걸까요. 가치와 효능이 사라진 여행이라면 그저 경제행위에 불과할 뿐이니 ‘광역화한 소비’쯤으로 바꿔 불러도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