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생각에 잠긴 공정위장 한기정(왼쪽) 공정거래위원장이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문호남 기자

■ 공정위, 동일인제 틈새조항 마련

한국계 미국인 쿠팡 김범석 의장
4년연속 총수 지정 피할 가능성
사익편취 등 불공정 감시 안받아

하이브 등 90곳 대기업 편입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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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내·외국인 역차별 논란을 해소하고, 통상마찰 등을 피하기 위해 지난 1987년 도입된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에 대해 국적과 관계없이 적용하는 판단 기준을 마련해 외국 국적을 보유한 오너(자연인)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재계에서는 동일인 지정 ‘예외 요건’의 문턱이 높아 친족 경영이 보편화된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서는 대기업집단 대다수가 동일인 지정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들에서 제도의 적용 기준 등을 국내 기업 문화 현실에 맞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한국계 미국인인 쿠팡의 김범석 의장은 4년 연속 총수 지정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쿠팡의 지배구조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자산 10조 원 이상) 상위 50개 기업 중 비교적 단순하고 투명한 편이기 때문이다. 우선 국내 쿠팡 법인은 2021년 3월 뉴욕증시에 상장한 ‘쿠팡Inc’가 지분을 100% 보유한 자회사다. 김 의장은 쿠팡의 ‘최상단회사’인 쿠팡Inc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 계열사 지분은 없는 상황이다.

쿠팡이 △법인을 총수로 지정해도 자연인이 총수일 때와 비교해 대기업집단 범위가 같고 △친족 등 특수관계인의 출자·경영·자금거래 관계가 단절돼 사익편취가 없는 경우 등의 예외 요건을 충족하면서 김 의장은 ‘사익편취’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감시를 받지 않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기업집단의 자연인들은 동일인 지정을 피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탓에 예외 조건이 오히려 쿠팡에 대한 ‘봐주기식’ 특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는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 개정안을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상 공정위는 매년 5월 1일까지 대기업집단 등을 지정해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 5월 15일까지 기한 연기가 가능하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을 손질하면서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이 늦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재계는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 규모가 90곳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하이브를 비롯해 파라다이스·현대해상·영원무역·대명소노 등이 새로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집단 규모가 2019년부터 해마다 늘면서 재계 안팎에서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맞는 지정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기준을 자산총액이 아닌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침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을 바꿔야 하는 사안인 탓에 여소야대 국면에서 규제 완화 효과가 있는 GDP 대비 비율과 연동하는 방안은 국회 문턱을 넘기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세원 기자 js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