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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이정우 기자의 영화감

땅 밑 헤매는 도굴꾼, 영원한 사랑의 신화로…‘키메라’

이정우 기자
이정우 기자
  • 입력 2024-04-03 09:20
  • 수정 2024-04-0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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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키메라’의 한 장면.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매주 영화는 개봉하고, 관객들은 영화관에 갈지 고민합니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어떤 얘길 믿을지 막막한 세상에서 영화 담당 기자가 살포시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립니다. ‘그 영화 보러 가, 말아’란 고민에 시사회에서 먼저 감 잡은 기자가 ‘감’ ‘안 감’으로 답을 제안해봅니다.

(13)키메라

‘땅 밑 무언가’ 감지하는 초능력
무덤파며 이승 떠난 연인 찾기
‘오르페우스’ 그리스 신화 차용

富·가정·공동체의 삶 포기하고
다시 지하탐험 선택한 아르투
현실과 조건에 대한 저항 담아


영국인 아르투(조시 오코너)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땅 밑에 묻힌 것을 느끼는 능력이죠. 그는 이런 신묘한 능력을 가지고 도굴꾼으로 살아갑니다. 그가 사는 이탈리아 시골 지방 땅 밑엔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이 남긴 유물 천지거든요. 그런데 그의 지하 세계 탐험엔 보다 중요한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이승을 떠난 연인 베니아미나를 찾는 겁니다. 땅 밑의 ‘잃어버린 것’을 찾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그는 ‘잃어버린 연인’도 찾을 수 있을까요.

이탈리아 감독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신작 ‘키메라’(3일 개봉)는 독특합니다. 머리는 사자, 몸은 염소, 꼬리는 뱀으로 이뤄진 그리스 신화 속 ‘키메라’처럼 영화는 여러 면모가 복합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인물과 배경은 굉장히 현실적인데 구전설화나 전래동화 같은 신비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전적으로 로르바케르의 연출 미학 덕분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극찬해 국내에서도 주목받았던 전작 ‘행복한 라짜로’처럼 영화는 일상의 공간에 신화를 차용해 관객을 미묘한 세계로 이끕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키메라’의 아르투(조시 오코너)는 잃어버린 연인을 찾기 위해 지하 세계를 헤맨다. 밑바닥 도굴꾼의 이야기는 숭고한 사랑의 신화가 된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밑바닥 도굴꾼 이야기인 동시에 숭고한 신화인 아이러니

영화에서 아르투가 속한 도굴꾼 일당들은 소위 밑바닥 인생입니다. 집도 없이 부랑자처럼 생활하는 그들은 역사적 유물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죠. 아르투는 그들과 좀 다릅니다. 그는 무덤에서 과거 선조가 남긴 물건을 주워 먹고 사는 도굴꾼이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연인을 찾기 위해 저승을 넘나드는 오르페우스 같은 인물입니다. 그의 연인 베니아미나는 이승에 속한 인물이 아니라고 여러 번 암시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투는 그녀를 찾는 걸 포기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밑바닥 민중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신화이자 숭고한 러브스토리입니다. “숭고한 것은 가볍게, 신성한 것은 불경하게 다룬다”는 건 로르바케르 감독이 추구하는 미학이기도 합니다.

아르투가 오르페우스 같은 인물이란 근거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도굴꾼으로 죽음의 장소인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하는 그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놓인 인물입니다. 더구나 땅 밑을 읽어내는 능력까지 있어 저승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능력자입니다. 환상 속에서 저승에 속한 베니아미나를 만나기도 합니다.

또 오르페우스처럼 아르투도 일종의 예술가입니다. 지하 세계에서 유물을 발견해내는 능력은 보이지 않는 데서 가치를 찾아내는 예술가의 영감과 유사한 데가 있습니다. 아르투의 예술가적 면모는 유물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집니다. 동료들이 무덤에서 발견한 동상의 얼굴을 자를 때 반대했던 것도, 결국 그 두상을 속물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물속으로 던지는 것도 예술가로서의 선택에 가깝습니다.

영화에 차용된 그리스 신화가 또 있습니다. 바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이야기입니다. 공주 아리아드네가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테세우스에게 건넨 실타래처럼, 베니아미나에겐 빨간 실이 연결돼 있습니다. 아르투가 이 실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연인을 만날 수 있게 되겠죠.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키메라’의 한 장면.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이승과 저승 뒤집기-반전의 미학

영화엔 위아래가 뒤집힌 듯한 화면이 자주 나옵니다. 아르투가 땅 밑에 묻힌 유물을 느낄 때 아래에 있던 카메라가 위로 180도 회전하며 상하 반전이 일어나는 게 대표적입니다. 이를 통해 지상은 지하가 되고, 지하는 지상이 됩니다. 똑바로 서 있던 아르투는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보이죠. 이승이 긍정적이고, 죽음은 부정적인 것이란 기존 통념을 반전시키는 감독의 장치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베니아미나는 아르투에게 말합니다. “태양이 우리를 자꾸 따라와.” 저승에 속한 그녀는 태양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승에 속한 아르투 역시 태양을 벗어나 어둠을 향해야 그녀와 만날 수 있죠.

이러한 반전 스타일은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복적 의미도 함유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대표적입니다. 아르투가 속한 도굴꾼 일당은 자본가 스파르타코에게 착취당합니다. 스파르타코는 매번 값을 후려치고, 값나가는 물건을 계략을 써서 빼앗기도 합니다. 도굴꾼 일당으로 대표되는 민중들은 자본가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거죠. 반대로 도굴꾼 일당들을 보는 시선엔 애정이 뚝뚝 묻어납니다. 가난한 민중을 따스한 시선을 바탕으로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건 이탈리아 영화 사조 네오리얼리즘의 특징인데요. 로르바케르가 네오리얼리즘의 계승자라고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민중의 밑바닥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일상을 신화로 느껴지게 하며, 이따금 인물의 행동을 빨리 감기로 보여주는 방식까지 ‘돼지우리’나 ‘아라비안 나이트’의 파솔리니 감독이 강하게 연상됩니다.

◇성장을 거부하는 절대 자유

아르투는 이탈리아(캐롤 두아르테)라는 현생의 여성과 소위 ‘썸’을 타는데요. 자식도 있고, 많은 사람과 공동체 생활을 하는 그야말로 삶의 의지가 가득한 생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아르투는 그녀와 살기보단 지하 세계 탐험을 택합니다. 태양보다 어둠을, 지상보다 지하를, 이승보다 저승을 추구하는 거죠.

아르투가 이탈리아와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일반적인 영화의 서사일 겁니다. 그런데 아르투는 다시 현실에서 도망칩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집이 아니라 거리이고, 밝음이 아니라 어둠이며, 이승이 아니라 저승입니다. 어떤 면에선 성장을 거부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성장이란 어쩌면 사회와 타협하며 삶 속에서 획득한 가치를 축적하는 것 아닐까요. 반대로 정착하지 않고 홀연히 떠나는 건 철들지 않은 자의 특권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실과 조건에 타협하지 않고 영원으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이 영화는 ‘절대 자유’를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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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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