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도드람 2023∼2024 V리그 남녀부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토미 틸리카이넨(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대한항공 감독, 오기노 마사지 OK금융그룹 감독, 강성형 현대건설 감독,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 한국배구연맹 제공

한국 배구에 ‘찬바람’이 분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드람 2023∼2024 V리그는 28일 정규리그 1위 현대건설과 2위 흥국생명의 여자부 챔피언결정 1차전을 시작으로 6개월 대장정의 마지막 단계를 시작한다. 남자부는 29일 정규리그 1위 대한항공과 3위 OK금융그룹의 대결로 챔피언결정전을 시작한다.

이번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흥미로운 점은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남녀 4팀 중 3팀의 감독이 외국인 지도자라는 점이다. 이번 시즌은 남녀부 14팀의 지도자 가운데 역대 가장 많은 4팀이 외국인 사령탑 체제로 경기했다. 이 가운데 성적 부진을 이유로 정규리그 도중 경질된 조 트린지 페퍼저축은행 전 감독을 제외하면 3명의 지도자가 모두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았다.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은 4시즌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V리그 최초 기록에 도전한다. 이는 전임인 이탈리아 출신 로베트로 산틸리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기록이나 틸리카이넨 감독 체제에서도 3시즌 연속 통합우승에 도전하는 만큼 V리그 기록에 오래 남을 업적이다.

이에 맞설 오기노 마사지 OK금융그룹 감독은 올해가 부임 첫 해다. 지난해 여름 부임 후 첫 출전 대회였던 2023 구미·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에서 강한 서브를 포기하면서까지 범실을 줄이는 극도의 실리 배구를 앞세워 깜짝 우승하며 돌풍을 예고한 데 이어 다시 한 번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다는 각오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은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한 번 V리그 여자부 우승에 도전한다. 지난 시즌은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한국도로공사의 전례가 없던 2연승 뒤 3연패로 허탈하게 우승을 내줬다. 하지만 이번 시즌도 우여곡절 끝에 우승 기회를 잡은 만큼 두 번 실수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반면 강성형 현대건설 감독은 국내 지도자의 자존심을 지킨 주인공이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2위를 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 시즌 정규리그 1위로 만회했다. 부임 첫해였던 2021∼2022시즌 정규리그를 1위로 마치고도 코로나19 때문에 챔피언결정전을 치르지 못한 아쉬움까지 씻을 기회가 왔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단순히 외국인 감독이 우승권에 많이 도달했다는 점 외에 추가 외국인 감독의 합류가 확정된 상황에서 앞으로 더욱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현대캐피탈과 KB손해보험이 각각 프랑스, 스페인 출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한 정규리그 2위 우리카드 등 외국인 감독의 V리그 추가 합류 가능성도 남았다.

V리그에서 국내 지도자의 입지가 줄어드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대한배구협회도 사상 처음으로 남녀 대표팀 감독을 모두 외국인에게 맡겼다. 그동안 국내 지도자에게만 허용됐던 남녀 배구대표팀, V리그 감독직이 점차 외국인 지도자에게 문호를 개방한 수준을 넘어서 점령당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배구인은 "국내 지도자의 존재감이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의 위기가 기회"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현실에 안주하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쌓는 데 소홀히 했던 국내 지도자들에겐 외국인 지도자가 많아져 경쟁 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금의 상황을 역으로 이용한다면 자신의 배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기회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