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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弟로 45년’ 함께 찍은 사진 한장 없지만… ‘배움의 영상’ 수없이 떠올라

  • 입력 2024-03-27 09:10
  • 수정 2024-03-2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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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18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윤식 교수 빈소의 영정 사진. 연합뉴스



■ 그립습니다 - 고 김윤식 서울대 교수(1936∼2018)

선생님,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책 정리를 이어가다, 뒤표지에 선생님의 사진과 저의 사진이 함께 담겨 있는 책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제가 영어로 번역해 1998년에 발간한 영문 서적을 기억하시지요? 그 시절의 선생님 모습과 제 모습에 눈길을 주는 동안, 문득 선생님과 함께한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선생님을 댁으로 찾아뵙기 시작할 때부터 선생님께서 저희 곁을 떠나신 2018년 5월 초에 선생님과 식사하며 담소를 나눌 때까지 45년의 세월을 보냈는데도, 선생님과 함께한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사진을 대신할 영상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서울대 교양과정부에 입학해 교지 편집 일을 할 때였지요. 교지 편집 지도교수이셨던 선생님과 자리를 함께했던 때가 사진처럼 떠오릅니다. 저에게는 늘 어렵게만 느껴졌던 선생님을 다시 뵌 것은 제가 2학년이 돼 문리대로 적을 옮긴 뒤 얼마 후의 일이었지요. 강연을 위해 문리대를 찾으신 선생님과 우연히 마주한 곳은 선생님 뒤로 마로니에가 보이던 교정 안이었죠.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댁의 약도와 전화번호를 주시면서 조만간 찾아오라는 뜻밖의 말씀을 주셨던 때의 선생님 모습과 그때의 정경이 지금도 사진처럼 생생합니다.

며칠 후에 저는 선생님 댁을 찾았지요. 선생님께서는 물으셨습니다. “자네는 자네 기록을 모으는 쪽인가, 버리는 쪽인가?” 초등학교 1학년 성적표까지 보관하고 있기에 저는 모으는 쪽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문학도로서의 최소 자격을 갖췄으니, 학문의 길을 가게.”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저에게 술을 따라 주실 때의 선생님의 모습도, 술잔을 받던 저의 두 손과 실내의 정경도 여전히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렇게 선생님을 댁으로 찾아뵙기를 거듭하던 중 곳곳에 흩어져 있던 서울대 캠퍼스가 관악산 기슭으로 모이게 되고 나서 학기가 새로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연구실로 찾아오라는 말씀을 영문과 사무실에 남기셨지요. 연구실을 찾은 저에게 선생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등록은 했는가?” 등록했다는 저의 대답에 두툼한 봉투를 건네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던 때 선생님께서 지으셨던 표정을, 어렵게 봉투를 받아 들던 제 두 손을 어찌 제가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 학기 자네의 등록금으로 준비한 것이네. 자네 아버지 노릇을 한번 해 볼까 했는데, 등록을 했다니 그 돈을 어쩌지?” 잠시 머뭇하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것으로 중국집에 가서 맛있는 것 사 먹게.”

선생님의 가르침과 격려에 힘입어 저는 문학 공부에 정진하였고, 운이 좋게도 저를 지도하신 저희 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른 나이에 인하대 영문과의 전임이 됐습니다. 그해가 1980년이지요. 그해 늦가을 도쿄(東京)의 신주쿠 우체국 11월 4일자의 소인이 찍힌 선생님의 편지가 학교로 배달됐습니다.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선생님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별일 없으리라 믿네. 9월 초에 이곳 東京(동경)에 왔네. 12월 말에 귀국 예정이다. 동경은 10년 전에 내가 유학차 와서 공부한 곳이나, 이젠 그때와는 달리 내가 너무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장 군이 대학교수가 되었으니, 어찌 세월이 가만있었겠는가.”

“어찌 세월이 가만있었겠는가.” 선생님께서 저희 곁을 떠나신 뒤 저는 이 말씀을 떠올릴 때마다 저미는 마음을 가누기가 어렵습니다. 가만있지 않은 세월에 떠밀리다 보니 이제는 다시 선생님을 뵐 수 없게 됐기에.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서도 마치 세월이 가만있기라도 한 양 여전히 학생 시절의 마음으로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던 때의 분위기 하나하나가 사진처럼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제가 선생님과 함께 찍었을 법한 사진을 상상 속에 그리며 사진 속 선생님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동안, 후드득 창문을 치는 빗소리가 들립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선생님이 그리울 때마다 제 마음을 적시는 중국계 미국 시인 리영 리(Li-Young Lee)의 시 구절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내 창문에서 밤새도록 중얼거리던 것은/비가 아니다./들판에서 내가 피해 달아나던 폭우도,/바다에서 나를 겁먹게 하던 폭풍도 아니다./그것은 내 일생 동안 나를 향해 움직여 온다./어쩌면 나는 그것이 무언지 알 것이다./어쩌면 그것은 나의 아버지, 비를 두 다리 삼아 찾아오신/나의 아버지, 찾아오신,/이 꿈, 비, 나의 아버지.” (밤비가 스치던 2024년 3월 22일 늦은 시간에)

제자 장경렬(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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