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길래, 천년의 소나무, 252×248×30㎝, 구리용접, 2020.

이 땅에서 오랜 세월 살아남았고, 또 무궁토록 살아갈 생명체 두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한민족과 소나무다. 소나무는 우리의 역사적 반려식물이며 분신이다. 그 생태와 속성이 우리의 유전자에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암절벽 꼭대기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기상을 보면서 감정이입을 해온 것이 우리 역사다.

오랫동안 교감에 몰입해온 조각가 이길래가 사비나미술관 벽에다 커다란 뿌리 도감(圖鑑)을 선보이고 있다. 땅속에서 치열하게 생장해가는 생명의 숭고한 서사를 투시한 장면이다. 절벽 끝에 독야청청하는 나무 이야기의 속편쯤 된다. 무수한 고리의 체결, 검투사의 그물로 포획한 것 같은 앵글과 환영이 인상적이다.

잘린 나무의 모습에 꺼림칙할 수도 있다. 하지만 뿌리의 이야기에 집중토록 하기 위한 조형적 생략법일 것이다. 놀라운 생명의 서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맞서기도 버거운 바위를 만나면, 피하지 않고 기어이 흙으로 변질시켜 생명을 이어가는 감동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

이재언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