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최응천(왼쪽부터) 문화재청장,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과 관람객들이 디지털로 구현한 ‘칠보산도병풍’을 감상하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 높이 5m 스크린에 ‘칠보산도병풍’ 구현… 韓·美 동시 전시

개심사·사암·금강굴·회상대 등
배우 류준열 해설로 천천히 살펴
폭포·천둥소리는 몰입감 극대화
그림 직접 확대해 볼 수 있는 곳도

K-공유유산,국내외 활용 길 개척

이미지 크게보기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칠보산도병풍. 문화재청 제공

“그대는 칠보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귀한 경관이 금강산에 버금간다고 하니 함께 구경가는 건 어떠한가”(유칠보산기)

일곱 개의 봉우리 중 여섯 봉우리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하나의 봉우리만 남아 칠봉이요, 일곱 가지 보물이 감춰져 있어 칠보라 불린 함경도의 숨겨진 명산 칠보산. 조선 명종대 함경도 회령부 판관을 지낸 임형수(林亨秀·1514∼1547)는 칠보산을 두고 ‘작은 금강’이라 상찬했다. 임형수가 칠보산을 유람하고 ‘유칠보산기(遊七寶山記)’를 남긴 이후 칠보산은 북관(지금의 함경도)의 대표적 명승이 됐고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조선시대에 대유행했다.

함경북도 명천(明川)에 있어 직접 가볼 수 없는 칠보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특별전 ‘작은 금강, 칠보산을 거닐다 :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칠보산도병풍(七寶山圖屛風) 디지털 영상 전시’를 통해 19세기 조선 후기 그려진 칠보산의 아름다움을 대형 스크린 화폭에 담아 전해준다. 국외 문화유산을 활용한 국내 최초 디지털 콘텐츠 제작시도인 이번 전시는 미국 현지 미술관에서도 동시 진행된다. 칠보산 일대의 장관을 그린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 ‘칠보산도병풍’은 국내외 단 4점만이 남아있는데 그중에서도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본(작자미상)은 최고로 일컬어진다.

재능기부로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류준열이 유칠보산기 첫 대목을 읽으며 수려한 칠보산도가 모습을 드러내자 관람객 사이에서는 감격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5m 높이와 20m 폭에 달하는 3면의 스크린에 영상으로 되살아난 칠보산도병풍은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 이상의 압도감과 몰입감으로 직접 칠보산도 속에 들어가 유람을 다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임형수의 여정을 따라가며 칠보산도에 그려진 개심사와 사암, 금강굴과 회상대 등 명소의 매혹적인 자태를 여유롭게 살핀다. 유칠보산기에 기록된 것처럼 비 내리는 칠보산의 밤, 눈 속에 파묻혀 버린 칠보산의 아침 절경까지 남김없이 보여준다. 상황에 맞춰 들려오는 빗소리, 폭포소리, 천둥소리는 한층 더 깊은 생동감을 더한다. 디지털 미디어 전시 기술을 통해 실제 그림에서 온전히 표현할 수 없었던 칠보산의 다양한 계절적 모습까지 구현한 것이다. 여기에 작곡가 양방언의 고급스럽고 우아한 선율이 어우러져 진한 여운을 남긴다.

영상 전시를 비롯해 다른 즐길 거리도 준비됐다. 전시실 입장과 동시에 관람객을 맞이하는 실제 크기와 동일한 칠보산도병풍 모작을 통해 병풍의 전체적인 구성을 파악할 수 있다. 영상 전시 후에는 손으로 직접 스크린을 확대해가며 칠보산도의 곳곳을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외로운 절 개심사부터 폭포 아래 금강굴에서 잠시 여독을 푸는 사람들까지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관 한편에는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12점의 한국 유물을 360도 회전시켜가며 살펴볼 수 있는 스크린 전시도 마련돼 있다. 이 중 ‘청동은입사호’와 ‘금동아미타여래삼존상’은 국내외를 통틀어 몇 점 남아있지 않은 희귀 유물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전시를 소개하며 “임형수의 유칠보산기를 통해 칠보산의 진가를 재발견한 것처럼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그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5월 26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