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997년 8월 최창조(왼쪽) 선생님이 제자 이상훈과 함께 전북 진안의 이상훈 집 앞에서 찍은 사진.

■ 추모합니다 - 최창조 선생님(1950~2024)

최창조 선생님과의 인연은 내가 1984년에 대학을 입학해 지도교수로 만나면서 시작됐다. 그때 선생님은 책 ‘한국의 풍수 사상’을 출간했다. 한국 풍수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해였다. 한국 전통 지리 사상인 풍수가 학문 반열에 오르고 한국 풍수 1세대를 알리는 저서였다. 그해 겨울방학 무렵에 선생님은 완주군 지역으로 답사를 제안했다. 마을 풍수 답사였다. 장군대좌형, 작약화심형, 옥녀개화형, 화심혈, 연화도수형, 노서하전형 등 답사는 용진 어느 주막에서 막걸리와 함께 마무리됐다. 답사 끝에 막걸리로 이어지는 시간은 큰 배움이었다. 이때 선생님은 아주 쉽게 풍수를 설명해 주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소위 이야기하는 형국론(形局論) 공부는 이렇게 풍수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자생풍수를 내세우듯 선생님은 품성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대학 MT 때 부안 격포의 선후배가 모인 자리에서 선생님은 ‘천둥산 박달재’를 구성지게 불렀다. 나는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지금도 ‘천둥산 박달재’가 나오면 눈 감고 목 놓아 부르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내 첫 저서 출간이 출판사에서 좌절되자 나보다 더 속상해했다. 막걸리를 즐겼던 추억은 선생님의 지인에게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서울대 교수직을 내던지고 1990년대 이후 강단이 아닌 현장에서 풍수학의 성과로 기념비적인 저서 ‘한국의 풍수지리’ ‘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 ‘땅의 눈물 땅의 희망’ ‘북한 유적 문화 답사기’ ‘한국의 자생풍수 1, 2’ 등을 펴냈다. 한국식 풍수를 ‘자생풍수’로 정의하고 명당 개념도 새롭게 정의했다. 자생풍수는 ‘치유의 지리학’이자 ‘인간의 지리학’으로 정의했다. 강단에 머물렀으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한반도 구석구석에 발걸음이 닿지 않았다면 찾아내지 못했을 풍수의 핵심이다.

책 ‘도시 풍수’ ‘최창조의 새로운 풍수 이론’ 등에 이르러서는 풍수의 파격이 등장한다. 좋은 땅이란 없다는 것이다. 명당은 찾아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만들어야 할 대상이라고 언급한다. 도시에서도 좋은 땅을 찾을 수 있는데, 아주 간단하다.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단정한다. 자생풍수의 개념은 ‘사람의 지리학’에서 정립된다.

선생님은 1990년대에 내게 전화해서 전라북도 진안 지역 전통적인 마을 몇 곳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KBS 방송에서 ‘풍수’를 주제로 ‘한국의 미(美)’ 촬영을 한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한국의 미’ 프로그램 주제가 이제는 풍수 영역까지 넓혀졌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 진안의 하초 마을, 율현 마을, 종평 마을을 안내했고, 이 산골 마을들은 방송이 나간 후에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어느 마을에 가든지 우리식 풍수, 자생풍수를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한국풍수인물사(2013)’에서 명당 개념을 간단히 정리했다. ‘사람을 평온하게 감싸 줄 수 있는 어머니 품속 같은 곳’. 마지막 저서 ‘한국 자생 풍수의 기원, 도선(2016)’의 일러두기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밝혔다. “풍수 공부의 최종 목적은 도선의 자생풍수를 더듬는 것입니다. 따라서 1978년 대한지리학회와 서울대 지리학과 논문집에 발표한 논문 이래 지금까지 해온 작업은 이 책을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자생풍수를 이루려는 풍수학의 40여 년 여정은 2024년에 마무리됐다. 지난 1월 31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생님은 한 줌의 재로 영면에 들어갔다. 향년 74세. 한국 풍수의 대가는 한 줌의 재로 그토록 사랑했던 부모님 근처, 소박한 묘역에 안장됐다. 아마 평소 지론대로 바로 그곳이 명당일 것이다. 선생님에게서 비롯한 한국 풍수학의 정립은 이제 풍수 2세대의 몫이 됐다. 이제 풍수는 생태환경 등 미래 학문으로 지평을 넓힐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 명당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제자 이상훈(전라고 교사)